“불행했던 과거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최대 현안이다.”
요즘 언론매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노태우 비자금, 5·18특별법 정국 및 전두환씨 구속이라는 대사건이 터지자 언론은 다투어 보도에 앞장서고 있다. 가히 언론자유가 유감없이 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잠시 쉬는 의미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보자.

“폭도들의 난동으로 지금 광주는 치안부재의 상태입니다…”(80년 5월말 모 TV 9시 뉴스 앵커의 발언).

“시위군중들을 향한 노태우 후보의 대처는 백전노장의 역량을 한껏 발휘한…”(87년 노태우 민자당후보 광주연설에 대한 H일보 여성논설위원의 코멘트).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언론계에 대한 예우로 ‘순한’ 것들만 골라 본 것이다.

75년 동아·조선일보의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외치다 쫓겨나고, 80년 신군부의 언론통제에 대항하던 언론인들이 대량해직된 이후 우리 언론은 철저히 독재의 시녀로 몸추스르기에 바빴다.

언론은 군부독재 청산을 외치는 재야 및 학생·노동자·농민의 외침은 외면하거나 ‘폭력’으로 매도했고, 군부독재의 억압적 통치행위는 ‘국가안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권력과 언론이 야합한 나라에서 정의와 진실은 설 자리가 없다. 필연적으로 권력형 부정이 저질러 졌고, 언론은 이를 방조했으며 더 나아가 떡고물로 문필적 양심을 팔았다. 정치권의 일상적 촌지는 관행으로 자리 잡았고, 급기야 수서사건 관련 언론인 5억원 수수설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기에 이르렀다.

권력과 손을 잡고 진실을 외면, 언론인 본연의 정의감을 상실했던 그 언론인들이 지금 각각 언론사의 간부직을 지키고 있다. 현재 그들이 외치는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진실인가. 정치적 상황이 바뀌어 5, 6공 세력이 정권장악에 성공한다면 언론은 또 어떻게 태도를 바꿀 것인가.

60년 4·19혁명이 일어난 후 언론계 정화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언론계 숙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채 언론인들이 모여 각오를 다지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4·19는 마무리되지 못했고 군부독재라는 암울한 시대의 막이 올랐다.

민주언론 없는 민주사회는 없다. 언론계의 과거청산없이 민주언론은 가능하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숙정의 기회를 갖고 있다. 제대로 청소한다면 민족의 앞날은 밝다.

그러기 위해 언론도 대숙정해야 한다. 불행한 과거사의 제2의 책임자는 언론이다. 1차 당사자들이 국민적 심판을 받고 있다.

다음에는 언론차례다. 결코 언론만이 면죄부를 가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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