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연 할 말이 없는 것일까. 최근 한국에서의 5·18특별법 제정을 놓고 지금까지 미국의 공식입장은 ‘노 코멘트’라는 한마디다.

국무부 어디를 두드려봐도 반응은 한결같이 “이는 순수한 국내문제이며 미국으로서는 코멘트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번스 국무부대변인도, 그의 보스니아 출장때 정례 브리핑을 대신했던 글렌 데이비스 부대변인도, 데이빗 브라운 한국과장도 누구나 할 것 없이 똑같은 대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석에서 만난 국무부 직원들도 한국문제만 나오면 예외없이 입을 닫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사불란한 ‘노 코멘트’는 5·18과 12·12 당시 주한미국대사였던 월리엄 글라이스틴씨와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존 위컴씨의 대답에까지 이어진다.

필자는 워싱턴에 부임하기 전부터 글라이스틴씨가 뉴욕에 있는 ‘저팬 소사이어티’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왔다.

국내상황이 5·18특별법 제정으로 발전되자 필자는 글라이스틴씨로부터 뭔가 반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기자의 거듭된 인터뷰 요청을 거부한 채 측근을 통해 “지금은 그에 대해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고 전해왔다.

위컴 전사령관은 그래도 보다 당당했다. 적어도 글라이스틴씨처럼 전화통화마저 거절하는 소심함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

그는 퇴역 후 애리조나주 투손시 자택에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한국상황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는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 두사람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있다는 것은 분명하다.올해 69세인 글라이스틴씨는 이달 말 저팬 소사이어티 회장직에서 물러나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뒤 자서전을 쓸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필자에게 “내 여생의 보다 적절한 시기에 (광주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뭔가 할 말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올해 67세인 위컴씨는 “지금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그 책의 내용은 그가 한국에 근무했던 3년 동안에 관한 것으로 “광주관련 내용이 포함돼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고 답한다.

그는 최근 한국상황에 대한 논평을 요구하자 “현재 한국의 혼란상황을 가중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게 보다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갖고 있다는 시사임이 분명하다.
글라이스틴·위컴 두사람은 5·18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핵심적인 정보를 갖고 있다. 이들이 해야 할 말은 많다.

과연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이동을 사전에 모르고 있었는지. 광주항쟁 과정에서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방치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광주항쟁 진압을 위한 20사단의 이동에 대해 미 측의 표현대로 ‘마지못해 동의한’ 것은 직접 개입을 뜻하는 것이 아닌지.

미국정부의 일사불란한 ‘노 코멘트’와는 달리 최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한국관련 기사 가운데 “한국 국민들은 당시 광주항쟁의 유혈진압을 사전에 막지 않았던 미국을 지금까지 비난하고 있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미정부의 반응은 아직까지 ‘꿀먹은 벙어리’다.필자의 느낌은 이렇다. 이들은 공범이라고. 글라이스틴·위컴 양씨를 포함해 미정부가 끝내 침묵을 지키는 것은 전두환·노태우 양씨와 함께 당시 한국을 학살과 독재의 비극으로 몰아넣은 공범임을 자인 하는 것이라고.

이제 이를 증명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춘추사 : 광주일보·부산일보·매일신문(대구)·대전일보·강원일보 5대 지방신문사 연합체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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