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 5일 전격적으로 철회키로 함에 따라 통합방송법 논의는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안과 야권·시민단체 단일안의 핵심 쟁점과 관련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와 여야 그리고 방송현업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이번 결정에 따라 통합방송법 제정이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는 점에선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통합방송법 제정 방침의 철회 배경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향후 전망과 관련해서는 여야는 물론 정부 부처마다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의견 수렴과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합방송법 제정의 유보에 대해서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분야에 대한 진출이 늦어져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는 시각에서부터 “정부가 방송을 더 이상 통제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확인된 계기”라는 입장까지 논의과정에서 표출돼 왔던 이견만큼이나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논쟁의 핵심 당사자인 공보처는 “속뜻을 몰라주는 야당과 방송노조 등의 시각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공보처 방송과의 한 간부는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일거에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특히 논란이 된 대기업과 언론사에 위성채널을 주는 문제도 당장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공보처는 “관련 당사자들의 법안 내용에 대한 지나친 확대해석이 일만 더디게 하고 있다”는 시각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의 시각은 다르다. 정통부의 관계자는 “공보처가 방송의 기술, 산업적인 측면에서 법안마련을 추진했다기 보다는 좀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가 밝힌 ‘다른 생각’은 방송에 대한 통제권 강화로 공보처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보처의 과도한 방송통제 욕심이 방송현업 단체들은 물론 정부내 다른 부처에도 ‘말썽’의 소지를 제공했고 결국은 법안처리가 유보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위성방송 실시 문제 등과 관련해서도 이 관계자는 “현행 전파법 등으로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중”이라며 법제정 무산을 위성방송 실시연기로 연결시키는 공보처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줬다.
정통부는 이와 함께 법제정을 진행하면서 위성방송에 대한 준비가 어느 정도 이뤄진 사업자들을 위주로 시험방송을 할 수 있는지 여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문공위 여당측 간사 박종웅 의원측은 정부안 강행처리가 유보된 마당에 또 다른 강행처리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의원측은 “여야의 법안을 함께 논의해 처리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대화원칙’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대화를 원칙으로 삼는다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무엇보다도 여야의 법안이 각 조항들에 대한 미세한 이견 조정으로 합의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기본 골격부터 다르니 ‘대화’를 한다해도 역시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이런 이유때문에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의 방송법 ‘개악’ 의도를 저지했다는 자신감을 획득한 방송사 노조들과 야당은 앞으로 방송법 개정 논의가 재개될 경우 상당한 명분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이들은 이같은 여론의 지지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법안에 대한 국민적인 홍보가 중요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방송사 단일노조 건설준비위는 이를 위해 우선 그동안 ‘방송법 개악저지’를 위해 싸워 온 내용들을 ‘백서’로 만들어 발간할 예정이다.

방송사 단일노조 준비위는 이와 함께 ‘방송단일 노조건설’이 정부의 법제정 강행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대응책이라고 보고 이에 대한 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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