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의 쾌도난마식 ‘역사청산’ 작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한 반비판 논리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둘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제해 둘 것은 켸켸묵은 ‘북한도발’을 들고 나오고 ‘친북세력’ 운운하며 국민협박을 일삼는 작태나 ‘총수의 불편한 심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 질 것이라는 등 일부 언론의 수구 반동적인 논리는 정색하고 비판할 가치도 없다는 우리의 입장은 명백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김대통령의 역사청산 작업이 정략적 의도에서 출발한 측면이 있다 해도 그것의 ‘방향’이 올바르고 당대에 청산할 과제이며 지금이야말로 물실호기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모든 국민적 역량을 그 ‘방향’으로 모아나가야 한다는 논리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다.

이같은 논리는 역사적 청산 작업의 출발 지점과 특히 그 목표한 바 지향점의 불명료함에 따른 진정한 청산의 왜곡 또는 실패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견제를 미리 차단하여 결과적으로 일을 그르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는 이같은 우려의 해소가 김대통령의 ‘고백’과 ‘실토’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광주의 아픔을 청산하는 것은 책임자 처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마저도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서 범위가 결정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광주의 정신이며 이 시대가 요청하고 있는 역사적 과제의 내용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정신은 박물관의 유물이나 관념이 아니다.

청산 작업의 진행 와중에서 현정권은 ‘북의 위협’이니 ‘앞으로 1년’이 중요하다느니 하면서 수십년 동안 지배 권력이 행했던 동일한 언술을 동원하고 있으며 충분히 해명되거나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간첩 사건이 ‘예전’처럼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한 항의와 함께 발표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박물관의 유물처럼.

UN을 비롯한 국제적 기구들이 현정부에 지속적으로 그리고 강력한 어조로 권유하는 인권 개선 요구-노동관계법, 국가보안법 등의 개폐 등-에는 여전히 눈길을 돌리지 않고 정부의 방송통제를 더욱 용이하게 하는 방송관계법을 제정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노동자들의 조직은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 노점상의 의문의 변사가 타살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대로 묻혀져 가고 있다. 대표적인 5공의 잔재 아닌가.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5·18 문제 등 암울했던 우리 역사의 발본적 청산은 여타 다른 정책적 과제보다 압도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선후의 문제는 있을 수 있으나 각각의 정책의 맥락을 꿰는 일관성에서 모순을 보여서는 곤란한 문제이다.

벌써부터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올해안에 현재 진행중인 청산작업을 마치고 내년부터 총선 국면으로 전환시킬 카드에 대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역사청산은 선거 승리를 위한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스러워 하는 대목이자 비판의 핵심은 출발점의 불명료함보다는 지향점의 불투명함이며 그것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의구심이다. 반비판의 논리는 이러한 점을 ‘본의 아니게’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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