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NYT, 정치범석방 : ①미석방자로부터의 각서 ②8·15 석방 ③미측 압력에 의한 것 <남산 김> △일 사회당의원 4명이 김대중사건 조사위해 향미(向美), 프레이저 등과 만날 예정 <남산 박광서씨 사무실>
12일 △울진에서 군초소내 민간인 사망 : 군인이 행패부리는 민간인 때려 <육본 민>
15일 △휴가병 강도 검거 : 휴가중인 사병이 강도 상해후 체포돼 <최대령>
16일 △제일교회 집회 : 공덕귀 여사 등 모여 구속자 석방운운 <남산 박>
24일 △방위병 총기사건 : 23일 춘천에서 방위병끼리 충돌 2명사망 <육본 최대령>
25일 △김재권 전 주일공사가 김대중씨 돕겠다는 기사 허위임으로 보도불가△채석운반 : 의정부 호원동 77 김부관씨 동산에서 돌깨서 운반중 ― 청와대공사용 △박동선에 뇌물받았다 시인 : 미의원 42명이 뇌물받았다고 시인 <남산 박> △필리핀 데모 : 필리핀 학생데모
26일 △카터 방한설 : 조지아주 신문 보도 Hold △친한의원망 구성기도 : CSM지(*Christian Science Monitor지) 보도 / 박동선 Hold <박>
30일 △국회의원 연행 : CIA 김재광 노승환 연행 <박> △거동 수상자 출현 : 8월30일 00:00 충남 청양군 적곡면에 거동수상자 출현 <국방부 보도실>
31일 △김재광 노승환 연행 석방 : CIA 두 의원 연행했다가 석방 <박>


9월

1일 △일진 철군 : 워싱턴 발 동양통신 1단계 6,000명 가운데 다수의 일진 9월내 철수
2일 △WP 보도 Hold : 미국은 박동선이 영국에 돌아갈 경우 범인인도 요청 <남산 박>
7일 △신민, 선거법 개정 시안 : 대의원선거 6개월전 대통령후보 지명해서 등록(대통령선거법만 Hold)
13일 △박동선 사건 중 : 긴장고조 내용등 과격표현은 피할 것
15일 △카터 제2의 친서 : 박대통령에게 보냄 / 박동선 사건에 관한 것 <노>
23일 △군 교통사고 (훈련중) : 9월 23일 02:30 화천에서 훈련중이던 트럭 전복으로 사병 1명 사망 3명 부상 <육본 민중령>
26일 △육군 헬기 추락 : 여의도 광장에 육군헬기 추락 △재일동포 국군의날 참석 재일동포들 귀국해서 국군의날 행사 참관 <육본>
28일 △김한조 뇌물사건 : 박동선과 함께 미대법원 기소 60만불 제공 △NYT 헬로란기자 박동선 사건 한국정부 은폐증거 있다 △시카고 트리뷴지 : 한국경제 발전 근로자의 저임금과 인권희생 위에 근거한다 △10.13 미국 대사관 : 리셉션에 미국저명인사들 참석 꺼려 박동선 사건 때문에 △한국정보부요원 미국에 망명 <남산 박>
29일 △주미영사 손호영 : 공금 갖고 도주 <남산 박>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장병 50여명 식중독 <남산 박 국방부 보도과장>
6일 △육군 오발로 민간인 2명 사망 :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모부대에서 15:00경 병기수입중 총기오발로 민간인 버스관통 2명 사망 <육본 보도실 민중령>
7일 △김형욱 일본 증언용의 표명 : 고바야시 의원에 일의회 증언 용의 <박>
9일 △학원동정 : 학원의 불미스런 동정은 일체 보도 금지
10일 △마산 코리아타코마 선박회사 불 : 2명 사망 군수산업체임으로 Hold 요청 <남산 이>
12일 △김형욱 증언 청취 반대 : 일 자민당 김형욱 의회증언 반대키로 <박> △고바야시 발언 : 김대중 조사에 소극적이라는 발언 △육군 경비행기 1대 월선 : 진해에서 정비하던 육군 경비행기 L―19 1대를 문관 4급갑 2명이 조종하고 10월 12일 12:00쯤 월선 <국방부 보도과장 박대령>
13일 △미 하원윤리위 자워스키 발언 : 자워스키 로비활동에 관해 새 정보 많이 나오리라 <남산>
14일 △미 하원윤리위 KCIA 증언 : 2명의 KCIA 요원이 윤리위에서 증언하리라는 것 <남산 김> △비행사 망명 회견 : ①박정권은 미국 앞잡이 조국 망치고 있다 ②남조선 식민지로 만들고 있다
15일 △10월19일 워싱턴 하원윤리위 : 김형욱 김상근 등 4명 증언 참가할 예정 Hold <남산 박>
17일 △이란 노무자 자살 : 이란 파견노무자 사장실서 분신자살 △CIA 유충국 : 유충국사건 <박>
19일 △포탄 폭발 : 10월 18일 밤 10:13 강원도 인제 105M 포탄 폭발 차 2대 파괴됨 <육본 민중령> △미하원 윤리위 : ①양 줄여 보도 ②박대통령 관계 부분 Hold ③특파원 육성보도 삼가 <문공부>
20일 △장병 월북 : 대대장과 사병 등 2명 20일 최전방서 월북
21일 △12월 중 : 수도권 방위훈련계획
25일 △연세대 데모 : 10월25일 12:00부터 천여명 유신철폐요구 데모 경찰과 대치 △이후락씨 거액빌딩 매수 사실 무근 : HR(*이후락)거액 빌딩매수설 무근 <남산 박>
27일 △방위병 탈영자살 : 경북 영덕군에서 방위병이 총기와 실탄을 갖고 탈영. 민간인을 쏘아 중상입히고 자살 <육본 민중령>
29일 △연세대 개강연기



11월

3일 △군트럭 전복 : 1명 사망 3명 부상
4일 △군트럭 전복 : 포천서 훈련도중 트럭전복 포탄 터져 1명 사망 <육본 조대령>
8일 △자워스키 김동조 전 주미대사 조사희망 Hold

9일 △미하원윤리위 : 김동조·이후락 등 증언 청취 요구 Hold △박동선 심문 : 도미니카에서 NYT보도 Hold <박>
10일 △선거법 개정 중 : 통일주체회의 대의원 선거법 개정 관계
14일 △NYT보도 : 미하원윤리위도 150명 의원 조사 <박>
16일 △302 삼해호 귀환 : 선원 19명도 소련지도선에 끌려갔던 배 <박>
18일 △최덕신 미국 망명 Hold <박>
29일 △미하원 청문회 : 사실보도만, 정확한 소스에 한해 TOP 안되고 박대통령에 관한 것 안됨. 유신체제에 관해 안됨, 녹음해설·스케치 . 특파원
30일 △서울대 징계 : 소요관련 28명 제명 34명 무기 6명 유기


12월

2일 △박동선 방송취소 : 1일 밤 9시 40분 KAL 006편 예약취소
5일 △자워스키 TEC : 대한 원조 중단 촉구 <박> △한양대 이영희교수 구속
18일 △김대중 석방설 : 사실무근이니 현혹되지 말라고 <남산 박>


1978년


1월

9일 △브레진스키 발언 : 한·미 정상회담 올해 불가 <남산, 청와대> △육군 유류보급차 강에 추락 : 1월9일 14:20 강원 화천 북한강에 육군 유류보급차 추락 운전병 1명 현장 사망 <육군 보도실 민중령>
12일 △에드워드 케네디 도쿄 Currespordents Club 연설 일절 보도 불허<박>
14일 △카터의 한국인권문제 발언 : 카터대통령이 미 편집인협회에서 행한 한국의 인권문제 발언 <남산 박사무실>
15일 △Capato 의원 발언 : 박동선의 미 의회 증도언과 이후락 등의 의회 증언을 한국 대사관과 협상결정 밝혀 <남산 박사무실>
17일 △NYT 보도 : 2주후 박동선 도미 증언 이뤄질듯 △자워스키 대한군사원조 안된다<박> △군인 총기 난사 사고 : 17일 새벽 강릉 모부대 육군 일등병 음주 총기 난사 군인 2명 사살, 민간인 1명등 3명 중상 <육본 민중령>
21일 △프레이저 북괴관련설 : 프레이저의원이 친북괴단체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아렌아델 미 하원의원 한국로비관련 김동조·이후락 신변인도요구결의안 제출방침 ― 하원 본회의서 ― 일 요미우리 보도 <남산 박>
25일 △미 하원 초선의원 48명 Ertel의원결의안 지지 Hold <남산 김과장> △소 빅토르 루이스 기자 : 27일 방일 한국관리 면담 <남산 박>


2월

1일 △박화춘씨 : 협상교섭 액수 기사화하지 말 것 <서정강>
3일 △순경난동 총기 : 군위군에서 순경이 총기난사 사고 <박광서> △전 필리핀 육참총장 : 나수치온 마르코스 정책 비판
4일 △일본사회당 국제국장 쓰키야마 내한 기사 Hold <남산 박사무실> △동남기업 세무사찰 본사 지시
6일 △Zaworski NBC 인터뷰 <박>
8일 △군 교통사고 11명 사망 : 2월8일 08:00 강원 인제 군축령 모범용사 38명 싣고 서울로 가던 육군 트럭 굴러 7명 사망 30여명 부상, 산업시찰 계획이었음 <육군 보도실>
10일 △최은희사건 KCIA관련 : 외신에 KCIA관련설 보도 사실무근
11일 △육군하사 인질 난동 : 2월 10일 23:00 논산에서 M―16으로 군트럭 탈취, 서울로 오다가 제1한강교에서 검문에 걸리자 신림동에서 주부 인질 난동 검거 2월 11일 02:00 <육군 보도실> △부산에서 육군장교 강도 미수 : 2월 11일 03:20 부산 ― 소위 권오찬, 방위병 장세철이 버스회사 숙직실에 들어가 무기로 경비원 위협 금품 뺏으려다 붙잡힘 <육군 조대령>
14일 △민주전선 발행 강행 : 긴급조치위반사항 불구하고
21일 △김해 공군 수송기 추락 : 21일 오전 이륙하다 기체고장으로 1명 사망 <공군본부>
22일 △John Saar기자 : 마닐라 발언 박정권 비난 Hold <박> △호주 CIA장 내한 △한국·이집트 합자은행 설치 <남산>
24일 △박동선, 워싱턴서 살겠다 : AP 외신 Hold <남산 박>
26일 △이라크 처녀 한국기술자 찾아 가출 내한 : 처녀 부모는 기술자의 납치행위라고 최규하 총리에게 진정서 <박>


3월

2일 △국회회기중 금기사항 : 체제비판·긴급조치 거론금지
4일 △한일안보의원협의회 구성위해 이종찬의원 등 5명 도일 관계기사 취급말 것 <정보부>
6일 △국회 재무위 중동 현대건설 사태 자료 요구 △야근자:학원 체제, 종교, 군·경찰관련기사는 국장에게 연락바람 <정보부>
7일 △김동조 소환 : 면책특권 편법으로 불러 들인다 <문공부>
8일 △민성식의원 등 5명 도일 <박광서>
9일 △국일피혁공원 나병기 자살 :“도둑 누명” 억울하다는 이유 노동절앞둔 근로자 자살 △버스 ― 군트럭 드리쿼터 충돌 : 대령 사망, 부사령관 중상 <육군본부>
10일 △통일당 노동절메세지 : 노동3권 부활 △동일방직 소동 : 근로자의 날 기념식장 <박>
11일 △김동조 증언 주장 : 유진오전 하원의장 미의회서 증언해야 한다고 <박> △ 동일방직 화재 <육본> △원자력이용협정 개정 <박>
12일 △인도네시아, 학생 데모로 긴장 : 수하르트3선 확실, 학생데모대 군인과 충돌 대부분 상가 철시 <박>
13일 △모로코 군사훈련생 입국 : 모로코 전세기편 모로코 훈련생 입국기사Hold <박>
14일 △일본에서 참사관 미국에 영주권 신청 요미우리 Hold <박>
15일 △프레이저청문회 특파원과 전화, 박대통령 관계, 박동선 한국관계 요구설 △세계배트민턴연맹 사무총장 내한, 말레이지아 테진수이 20일 방한 예정, 대 중공 스포츠외교 추진
18일 △조민련(朝民聯) 대표 50명 입국 △일양약품 기사, 먼저 국장에게 보고함
19일 △북괴, 남북적십자회담 제의 거부. 북괴적십자회는 대한적십자사가 요청한 제26차 남북접십자회담개최에 대해 78팀스피리트작전을 핑계로 거절. 정식발표는 20일(월)에 함
20일 △남북적십자회담 연기에 대한 외신보도는 일체 금한다 <남산 박>
22일 △FBI문서공개, 박동선로비 활동 관련후버국장이 71년 키신저에 보내 <박>
23일 △KAL 월남영공 통과, 미국 등이 통과허가를 받은데 이어 한국도 교섭중
28일 △김대중 탈당(내,외신) <박>
29일 △육군사병 처녀 강간, 28일 23시 원주에서 78항공중대 병사 1명이 지나가던 처녀 강간, 헌병대 이첩 <육본 조대령>
30일 △한―베트남 상담, 공산 베트남과 석탄 상담 △대한전척 채권자 농성 풍전호텔 사무실 앞 농성 <남산 박>


4월

3일 △김동조 미국의회 증언에 관한 내외신 일체 <박> △통일당 전대열 석방 △동일방직 여공 공청회 △포터 전 주한미대사 도청, 외신은 통신 인용만 가
7일 △필리핀 총선에서 아키노 군사재판, 아키노 유세, 군중 아키노 지지데모 <남산>
8일 △이후락 비행, 일본 주간 현대 이후락 지하철 건설싸고 1억엔 수뢰. 주간 POST 이후락 일본기생과 3년 동거 <박>
12일 △필리핀 政情, 데모, 구속, 자유유보 <박>
13일 △석탄수입 <남산 박>
19일 △김형욱 전KCIA부장 방일설 <박Office>
27일 △동해안 경비사 해안초소 폭발물, 26일 23시30분 동경사 56R 113N 해안초소. 제대회식 중 병사 1명이 수류탄폭발 군인 1명 사망, 1명 중상, 민간인 1명 부상 <육군 조대령>


5월

4일 △진주에서 정찰기 추락, 진주에서 정찰기 1대 훈련비행 중 추락, 1명 부상 △서해안 초소병 무기 난사 0시 30분 보령군 해안초소에서 초소병이 다른 병사 1명을 사살 △2군단 지역 산불 3명 질식사 오전 2군단 지역 산불로 진화작업하던 장병 중 5명 질식, 그 가운데 3명 사망 <육군 박대령> △화국봉 북괴방문, 동영상 . 사진전송 안됨. 만화만 가능.
6일 △캐나다 공보직원 망명 요청
8일 △서울대생 유인물 배포, 시위중, 안된다 △독도 주변 일어선 조업중, 안된다
11일 △자워스키 한국정부 △김동조 증언 비협조 발언 <박>
12일 △이서옹 전종정 성명, 현재 종정은 자신이며 모든 권한을 행사하겠다 <문공부>
15일 △계엄조치 위반자 석방 여야 논평 취급말라 <남산 박>
16일 △민주전선 편집국장 연행, 취급하지 말라 △한국신학대 휴교 불가취재
19일 △거문도 간첩선 인양, 보도관제 <국방부 보도과장>
21일 △33사단 무장탈영병 자살, 20일 오전 33사단 무장탈영병 인천에서 자살, 민간인 피해 없음 <육군 보도실 조대령>
26일 △독도 보도 삼가


6월

4일 △소르본느 학생 오태식 북괴로
5일 △MBC 방해전파받다 △박대통령 제주도 동정 <청와대>
13일 △대의원 소송, 충남 당진군 함덕면 낙선자가 당선자 걸어 서울고법에 제기 △이성용 민청학련 관련, 경북대재중 제적 자살 <남산>
14일 △203정보대 이중광소령 월북 △특전 훈련중 헬기추락, 12시 2분 특전훈련 도중 코브라 헬기 1대가 기총소사 중 안에서 불이나 팔당호에 추락, 2명 실종 <육본 조대령>
15일 △한국인 노무자 필리핀서 피살, 박화춘씨 소속회사 노무자 1명이 모슬렘반도에 의해 피살된 시체로 발견됨 <남산 박>
19일 △호주 선교사 라벤드 추방, 목적외 활동 체류 연장 불허 △자유중국 정보부장 내한 <남산 박>
22일 △모로코훈련생 100명 입국
28일 △양영실 영주권 신청 캐나다 토론토주재 영사 △프레이저 청문회 기사 이름은 한글로, 사진 불가



유신 반대투쟁 한층 가열

1978년

78년은 박동선사건이 마무리되고, 학생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 등의 반유신투쟁이 확산일로를 걷고 있던 해였다.

이해 7월 박정희는 제9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박정희가 일본육사 출신으로 관동군장교를 역임하였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보도가 금지되었다(7.5).

박동선사건은 박정권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미 사법부 및 의회 소환 증언에 나서게 되면서 조사가 급진전되나 미 의회의 레온 자워스키특별조사관은 다시 전주미대사 김동조의 소환조사를 박정권에 제기하였다(1.15, 1.17, 1.21, 2.6, 3.11, 4.3, 5.11 등). 결국 박동선사건은 한명의 미 의회의원의 구속과 7명의 징계, 재미실업가 김한조를 의회모독 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종결된다.

사건은 마무리되었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미 카터행정부는 사실상 박정권에 대한 용도폐기(?)를 결정하게 된다. 프레이저 보고서는 미 의원매수는 박정권의 지시이고 통일교의 활동도 박정권과 관련되어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3.15, 6.28, 11.1).

정치적 관계에서 박정권과 미국의 갈등과는 별개로 군사관계에서는 팀스피리트한미합동군사훈련이 76년 시작된 이래 최대의 규모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3.19).

70년대 민주노조의 상징으로 불리는 동일방직노조는 대의원선거과정에서 경찰과 KCIA의 방조 아래 구사대로부터 똥물세례를 받고 400여명이 해고되는 등 야만적인 탄압을 받았으나 3.10 근로자의 날 행사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면서(3.10, 4.3) 끈질기게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사건과 함께 함평농민들의 고구마 사건은 박정권에 대한 민중들의 조직적 저항을 상징하고 있다.

유신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투쟁은 78년에 들어와 더욱 확산되었다. 6.12 서울대의 ‘학원민주선언’의 발표와 5천여명의 시위, 6.26 광화문에서의 대규모 가두시위(10.11, 10.19), 경북대생을 비롯한 수천명의 시위가 있었다. 박정권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경북대를 휴교조처했다(11.7).



2차 석유파동 국민생활 최악

1979년

박정권은 79년에 들어와 내외의 어려운 여건을 남북관계로 타개해보려고 1월 19일 ‘남북당국자회담‘을 제의한다. 그 결과 2월 17일 남북은 1년 3개월만에 판문점에서 회동하게 된다(1.23, 1.27, 2.7 등). 북은 3월 1일을 기해 대남비방방송을 중지하고 남북탁구단일팀의 구성을 제의하는 등(2.21) 79년은 남북관계의 해빙무드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79년은 2차 석유파동이 시작되는 해였고 경기침체와 인플레로 국민생활은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79년에 박정권의 명줄을 재촉한 결정적 도화선이 된 사건은 YH여공들의 투쟁이었다. 농성 이틀째인 11일 경찰 천여명이 신민당사에 난입, 여공 172명을 강제해산하고 기자와 국회의원까지 무차별 폭행, 연행하였다(8.9, 8.15, 8.17). 이미 사태수습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던 박정권은 신민당 김영삼총재를 제명시킴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10.6, 10.11, 10.14).

유신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10월 16일 부산에서의 대규모 민중항쟁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박정권은 18일 자정 황급하게 부산지역 일원에 대한 계엄령을 선포하게 되었다(10.17, 10.18). 그러나 시민들의 투쟁은 마산, 창원으로 확대되었고 박정권은 다시 20일을 기해 마산, 창원 일대에 위수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진주시켰다. 24일에는 대구에서 대규모 학생투쟁이 전개되었고 반유신투쟁의 전국적 확산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운명의 10월 26일,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던 것이다. 박동선사건과 미국으로부터의 용도폐기, 경제의 파탄, 더 결정적으로는 국민들의 전국적 항쟁의 확산으로 인해 박정희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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