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화물선 좌초―대마도 근해서 극동해운 좌초 <이종기>
23일 △한승헌 상고심 선고 △김지하 기록검증 실시
24일 △김지하공판, 풍천화섬 집단시위 공판, 구속자 위반 천주교기도회 <남산 박>
25일 △원자력병원서 병사 원자력연구소 직원 사망 <문공부 남산>
27일 △카터 행정부의 대한정책관계 외신기자들의 작문 억제 보도 <남산 박>
28일 △육·해군장병 패싸움 끝에 살인(인천) <육본> △육군 트럭과 순환열차 충돌. 군인 2명 사망(경기 고양 벽제) <육본>

12월

1일 △영빈관 부정 <국장>
3일 △국세청 뇌물 : 국세청 세무직원 뇌물먹고 세금 짜게 매기다 구속된 법원기사
7일 △고려원양 주식위장 분산 : 의명국장(依名局長)
8일 △풍천화섬 데모공판
14일 △김지하 구형공판 : 재판자체가 hold임
15일 △학원침투간첩 백광옥 구형
17일 △공수부대 헌병대 패싸움 : 김해에서 1명 죽어 <육본 최대령>
23일 △김지하 : 선고 공판 △강문봉 사건 : 긴급조치 위반 부분 삭제 △한빛교회 기도회 : 파주자살 사건
24일 △백승민사건 : 작게 취급 △전당포 강도 : 자극적인 것 피해 줄 것 △교회, 성탄 이브 : 특정인 목사, 신부 잡지 말 것
27일 △귀화간첩 석방 : 일본에서 일본에 귀화 간첩 석방 <박광서>


1977년

1월

4일 △T―14훈련기 불시착 : 4일 P(*오후) 3시반 영동(永同) 야산에 불시착 2명 부상 <공군본부>
8일 △북괴병 1명 귀순 : 동부전선 <국방부>
9일 △군인끼리 싸워 열차 유리 파손 9일 02시 동대구역 구내 서울발 부산행 열차내 육군 해군 사병 난투극 <육본 최대령>
17일 △NYT : 주한미군 철수문제, 한국내 모든 정파의 일치 야기 <문공부> △대통령 모독죄 무죄, 술먹고 명동사건 관련 대통령 비난
18일 △긴급조치 9호 위반 공판 : 목사 등 긴급조치 선고 공판 △해외 공보관 회의 : 3월 세포에서 해외 공보관 회의 <문공부> △김종락씨 수뢰 보도 : 김종락씨 초계정 1기 구입하면서 140만불 수뢰 / LA Times, 요미우리 보도 <박광서>
19일 △반체제 기사 삼갈 것 : 동구반체제, 이집트 데모, 인도총선 기사 보류 <박광서>
24일 △긴급조치 위반사건 : 함윤식 사실심리 <남산> △통일당 성명
26일 △긴급조치, 3·1사건 : 두 사건 관계 일절 보도금지 <박광서> △중공 어부 중공으로 귀환 : 황봉영 중공 어부 27, 28일 쯤에 돌아가는데 hold해 달라 <남산 김>
27일 △주한미군 관계 : Cool down △남북정리 협상 : Hold △긴급조치 9호 위반 공판 : 이재학 전도사 ― 고법 △목요기도회 : Hold △소·루마니아 체육인 내한 : 세계 사격연맹 준비위 참석차 <남산>
28일 △김정일 신년사 : 1월 26일 내외통신 김정일 신년사 <남산> △양구, 탱크벽 촬영 : 대치중 <육본 최대령>
29일 △미 원자력 회사, 한국에 뇌물 제공 UPI 외신보도
30일 △문대일 방한 거부 : 문대일 초청 거부 <남산>


2월

1일 △고중령 실종 : 육본 작전 참모부 고중령 천호동 근처서 실종, 수사중 <육본 최대령>
4일 △조민련(朝民聯) 3자회담 제의 : 조민련이 민단·조총련에 통일을 위한 3자회담 갖자고 제의 <박광서>
6일 △육군 일등병 여급 살해 : 강원도 어음리 육군부대 사병이 술마시고 접대부와 시비끝에 오발로 접대부 살해 <육본 최대령>
7일 △긴급조치 위반 공판 : 함전도사
11일 △PP(박정희 대통령), 알리 타이틀 유치관련 : 알리 타이틀 유치에 PP 관련, UPI <청와대>
14일 △사법기관 강남이전 <홍사장> △문공장관 홍콩 회견 : 회견내용중 김대중사건과 관련된 문명자, 김형욱에 언급된 부분
15일 △제천에서 기재 도난 사고 홀드
19일 △휴가병 투신 자살 : 제3한강교에서 18일 오후 5시반경 육군 강일병이 제증명을 한강교에 놓고 실종. 시체인양 때까지 보류 <육본 최대령>
26일 △한국인권, 외자도입난관 : ①피코크 호주외상 한국인권 경고 ②Business News Magazine, 한국 정부로부터 외자도입 어렵다 <남산 박 사무실>
28일 △자민당 안보조사위 주한미군 반대 내용중 M 60탱크, 마이크 호크스 미사일 등 명칭부분 보도 삭제 <남산 박>


3월

4일 △민주통일당 메시지 : 구속자 석방등 <남산>
7일 △주한미군 : 마이니치 보도 3월 하순 미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카터에게 제출 <남산>
8일 △윤보선 NYT 회견 : 윤보선 주한미군 철수반대. 미국은 한국내 정치제도를 이유로 한국민을 버려선 안돼 △신민 성명 : 부여지구당 관계
9일 △청년, 일 대사 면담 요청 : 인천출신 청년이 독도 영유문제를 항의하기 위해 일 대사 면담요청 즉심회부 <경찰>
12일 △국정교과서 부정 수사 : 청와대 사정서 수사중 끝나면 기사화 <치안본부> △현대조선 사우디와 공사 계약 대북괴 방해공작 때문 합통통신사 취소전문
15일 △소련 목사 내한 : 소 목사 내한해서 설교도 <박광서>
16일 △긴급조치 공판 : ①고영근 목사 상고심 대법 ②김수근 등 공판 형사지법 △44살 긴급조치 9호 위반 원심 징역 7년 자격정지 2년 고법에 환부

17일 △한국화약 불 : 화약고에서 불 3명 화상, 수류탄 총포화약 생산 <국방부 보도과장>
18일 △청주대 데모 : 청주대 ROTC 62명 17일 오후1시~5시 20분 교정에서 교육거부 농성 : 1명 제적 부당하다고 <육본 최대령> △새로운 땅굴 : 판문점 근처에 새로운 북괴 땅굴 발견, 동양통신 보도 <남산 박>
22일 △명동사건 공판 외신보도 : 이에 관한 외신보도 일절 방송 금지 <남산 박>
25일 △외무부 명동사건 선고 논평 : 대법원 법관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판결내린 것 <남산 박>
26일 △탱크 불 1명 소사 : 26일 오전, 파주에서 훈련도중 TANK에서 불이나 사병 1명 소사 <육본 최대령>
30일 △육본 중령 시체로 : 육본 작전참모부 77년 2월 11일 천호동 근처서 실종됐다가 시체로 발견 <육본 최대령>
31일 △한빛교회 : 한빛교회 기도회 <남산>


4월

2일 △탈영 : 인제군 모부대 23살 김창수일병 1일 오후 3시 M16 갖고 탈영 <남산>
4일 △탈영병 벽제 : 동료2명 사살, M16 소지 <최대령> △ CIA 사칭 4명 구속 : CIA 사칭 4인조가 삼강산업 공장장에게 사퇴 공갈
8일 △긴급조치 9호 위반 공판 : 연대 경제과 4년 김영준 사실심리 △불온유인물 : 서울법대 4년 이범영 등 3명에 대한 사실심리 △남대문 교회, 기독교회관 : NCC 고난주간 기념예배 △한신대, 서울사회대 : 농성 유인물
9일 △한신대 휴교 : 유인물 농성끝에 <남산>
11일 △서울 공대생 시위 <남산>
12일 △서울 미대 데모 : 서울대 미대생 데모 <남산>
14일 △NYT 보도 : 박대통령, 한국 야당인사가 반정부 활동 안하겠다고 약속하면 구속자 풀어주겠다고 △일본 산경신문 : 다음 한국대통령은 김종필이다 <남산 박>
18일 △NCC 구속자를 위한 기도회 : 기독회관 △천주교 구속자를 위한 기도회 : 명동성당 △KSCF. 4·19 기념강연회 : 기독교회관 △서울대 4·19 전후한 야외 학습 : 학과별 고궁관람 등

23일 △이슬람교 위한 회견 : 홍영기 복지 안전법 위반 <남산 박> △37사단 난동 : 22일 오후 9시반 영동 예비군 10명 삭발 난동 △인도네시아 CIA장 보좌관 내한 : 인도네시아 CIA 보좌관 24일 내한
25일 △향린 교회 사태 △사제총회 : 제주교구 △NCC 인권위 : 기독교회관 △구속신부 위한 기도회 원주교구

29일 △육군사병이 휘발유 팔다 불 : 4월29일 부산에서 육군부대 엠블런스 운전사가 휘발유 5통을 팔려고 오복례 여인집에 갖고 들어갔다가 연탄불에 인화 화재, 오여인 화상 <육군 보도실 최대령>
30일 △육군 탄약고 화재 : 경북 울진군 울진면 육군 모부대 탄약고 불 04시 부터 타고 있음 <육군 보도국 최대령>

5월

2일 △사우디 대표 방한 : 카쇼기 회장 등 14명 5월2일~6일까지 <남산>
4일 △사병 총기 난동 : 4일 오전 3시 화천 이진수상병 음주 내무반 M16 난사 3명 중경상 5발 갖고 도주 <최대령> △요미우리 해명 : 요미우리가 사고를 통해 해명안하고 구두로 해명한 것을 해명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보도는 금지
9일 △한반도 국제회의 개최 : 일 우쓰노미야의원 9월중 한반도 국제회의 개최 <남산>
10일 △중동진출 한국 : 현황을 알 수 있는 구체적 통계숫자는 Hold할 것 △하비브·브라운 방한 : 외무부 공식발표할 때까지 일절 Hold <남산 박>
11일 △괴선박 침몰 : 10일 저녁 삼천포 앞바다 괴선 침몰, 조사중 <국방부> △5월내 철군 예비회의 : 워싱턴 발 합동통신, 주한미 지상군 철수 예비회담 △장경근 귀국 : 발포책임자 <남산>
13일 △부완혁 선고유예 : 김지하 5적시 게재 반공법위반 상고기각 <남산>
14일 △하비브·브라운 : 양인 내한 공식발표 외에는 Hold <남산 박>
16일 △요미우리 보도 : 주한미군 78회계연도 3~4,000 철수 Hold △장전두 출국 : 사할린 동포 모국 방문 마치고 <남산>
18일 △군인 총기 난동 : 18일 01시 삼척 일병 수류탄 터뜨려 일가 노부부 사망 및 중상, 일병 자살 <육본 최대령> △청와대 경제제2비서실 이석표 중상 : 방위산업실험 중 시험사격하다 중상 수술 <청와대>
20일 △중공 어선에 피해 : 지난 17일 602 일성호 등 어선 3척이 조업중 중공선박의 공격을 받아 어망 등을 탈취당한 내용. <정보부>
21일 △여야관계 악화 : 종로 보선 앞두고 불참 등 악화 <남산>
23일 △통일당 성명 : 민주통일당보 조판원고 압수, 관계자 강제연행규탄 <남산> △창서국교 불 : 마포구 창서국교 불
25일 △강변도로 교통사고 : 유조차 공군짚차 충돌 공군운전병 사망 <공군 이대장>
26일 △군화약 폭발사고 : 26일 오전 11시 양산 화약 폭발 사병 3명 폭사 <육본 최대령>
27일 △검사 이동 : 검사 3명 CIA로 전보 <남산> △박대통령, 이철승·정의장 면담 : 철군 설명기사는 청와대 발표에 한한다 △목포앞 피납어선 귀환 : 중공에 납치 됐던 어선 오후 5시 귀환중
29일 △부산 사병탈영 체포 : 부산 해운대 부근 경비중대 사병이 탈영했다가 20:40 체포 <육본 보도실31일 △대한전선 TV 시청료 : 민사지법, TV시청료 1년치 선납 법적 근거없다 <홍이사>


6월

2일 △일 자민당원로 나다오의원 방한―합동통신 당국 요청으로 취소
4일 △박정훈 제소 : 선거공보 송부금지 가처분 신청 <남산>
6일 △주한미군 78년 말까지 6,000명 철수 NHK보도 Hold
8일 △국제박물관협의회 참석한 대표 귀국 : 이난영, 백승길 <남산>
9일 △군수품 수출 : 한일산업 5월 26일 이디오피아에 군수품 661만불 선적
10일 △KCIA 외신 삭제요구 : 미의회가 박동선사건 조사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했다는 기사 중 KCIA 활동 언급부분 삭제 요망 <남산 김과장> △하비브·브라운 청문회 : 인권관계 삭제 보도 <남산 박>
11일 △월남난민구조 : 호남정유 유조선이 월남난민 38명 구조 <남산>
12일 △군인이 술집주인 총살 : 시흥군 군자면 반월공업단지 김상한 상병이 원시 2리 원동용(20) 술집주인 총으로 쏴 죽여 <육본 최대령>
13일 △군인 총기 난동 : 파주군 신탄면 20사단 일병 내무반에서 M16 난사 2명 사망, 1명 부상, 자살 <최대령> △미도파 시계점 : 밀수시계 압수
15일 △신탁은행 : 효성물산, 수출서류 위조 은행돈 3천만원 사취 <김사장>
16일 △월남 난민 상륙 : 공해상에서 우리 유조선에 구조된 월남난민 30명 여수항에 상륙허가 보도보류 <남산 박>
17일 △WCC 총무 강연 : 정동교회 강연후 구속자 석방 요구 시위

18일 △총기오발사, 울산에서 헌병 M16 반입중 민간인 1명 사망 <최대령>
20일 △KBS 기자 폭행 : 귀성단 입국 취재하다 CIA요원으로부터 폭행·연행·석방
22일 △박대통령 미 로비활동 축소지시 : 김상근 사건후 로비활동 축소지시 NYT <남산>
29일 △군차량 전복사고 : 6월 29일 오전 11:30 충남 서천면 훈련병사 태운 군트럭 전복 2명 사망 5명 부상 <육본> △중공과 대륙붕 협상 할수도 : 국회 엄영달의원 질문의 답변중 “중공과 협상할 수도”<남산>


7월

4일 △NYT 보도 : 박대통령이 김형욱 암살 지시했다 △박동선 가족걱정 : 모든 사실 다 밝히고 싶어도 한국에 있는 가족 보복 두려워 못한다 △프레이저 주장 : 박대통령이 권리를 국민에게 넘겨주지 않는 한 주한미군 전면 철수해야 <남산 남> △간첩조사중 자살 : 남대문서에서 간첩혐의 조사중 안창민 3층 아래로 뛰어 내려 자살 <남산 박>
15일 △추콩 나이지리아 판무관 일행 3명 내한 : 현대그룹 초청으로 <남산 박>
21일 △소련인 5명 관광, 소련인 5명 선편으로 부산에 도착 관광중 <남산 박>
22일 △리비아 연수생 내한 : 북괴와 수교국인 리비아 연초제조기술연수생 129명 1차 23명 7/29 입국 77/8~78/1 6개월 연수 <남산> △휴가병 충돌 : 22일 오전11시 대구서 육군 휴가병이 개머리판없는 카빈총 휴대하고 가다가 민간인과 충돌, 총 버리고 도주 <육본 최대령>
23일 △북괴 200해리 부작용 : 외무부 부인 / 조절후 협의제의 / 어민 조업 영향, 정치 군사 영향, 정부의 조치 전망, 정부 조치 마련중 그 때까지 Hold <남산 김과장>
24일 △민간인 사살 : 울진군 가산면 동산리 해안초소에서 24일 01:40 민간인이 수하불응 M16발사 2명 사망 3명 중상 <육본 최대령>
25일 △김형욱은 민족반역자가 아니다 Hold △김정일 판문점시찰 : 전송사진 방영 불가
26일 △군인 난동 : 25일 밤 11시 부산 동래구 연산 PB 2관구 군인 15명 기물파손 난동 <최대령> △긴급조치 위반자 : NCC위원회(기독회관) 미석방자 대책 △양임교회 사건 선고 공판 대법원 △연극가 이재호 공판 : 긴급조치위반 체제 비판 형사지방공판 <박>
27일 △일 우익단체 DMZ에서 군사훈련 : 서울로 곧 올 예정 △현대건설 사원 2명 조사 : 사우디 현지 경찰이 <박>
30일 △NYT, 박동선 : 브라운 일행중 1인이 한국에 남아 박동선건 한국정부와 모종의 노력중 <남산 박>


보도지침의 사회정치적 배경

박동선사건 회오리 바람불어

1976년

1976년은 유신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는 상징적 두 사건이 발생한 해이다.

하나는 정치권과 재야의 반유신선언인 ‘3·1민주구국선언’의 발표이다. 이 구국선언에 대해 박정권은 두 명의 야당 대통령후보를 포함한 재야 지도인사 18명을 기소하였다. 이 사건의 재판은 피고들의 사회적 무게와 그들의 재판에서의 당당한 태도, 사건 변호인단의 총사퇴 등 숱한 화제 속에서 진행되었으나, 박정권은 선언의 내용에서부터 재판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보도통제하였다(3.6, 3.15, 3.22 6.18, 6.19, 7.8, 8.4, 9.9, 11.13 등).

또 하나는 10월 24일 미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로 시작된 이른바 ‘박동선사건’이다(10.24). WP지는 박이 1백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동원, 90여명의 미 의회 의원들과 관리를 매수해왔다고 보도했다.

이틀 뒤 박정권은 한국정부는 박과 무관하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10.26). 그러나 다음날 WP지는 미CIA가 청와대를 비밀리에 도청해왔으며, 박의 대미 로비활동에 대한 청와대회의에 관한 첩보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대해 박정권은 미국의 청와대도청이 주권침해라고 공개해명을 요구하였고, 미국은 WP지의 보도 이후 뇌물사건의 수사를 위해 누구든 조사하겠다고 박정권에게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이 사건은 2년 반에 걸쳐 한미간에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었으며 박정권의 종말을 재촉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보면 76년은 학원통제를 위해 교수재임용제가 실시됐으며(2.27, 3.2) 이른바 ‘판문점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하여(8.18, 8.19, 8.21 등) 남북간의 대결분위기가 고조되던 해였다.



김형욱 전중정부장 망명

1977년

77년의 보도지침은 재야와 학원의 반유신투쟁, 그리고 박동선사건 관련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박동선사건은 박을 송환조사하려는 미국과 이를 거부하는 박정권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면서 더 확대되었다(5.14, 6.10, 6.22, 7.30, 8.25, 8.26, 9.2, 9.13, 10.19, 11.8, 11.9, 11.14, 11.29 등). 미 법무성은 박의 도미증언이 지연되자 자체조사 후 9월 정식으로 기소하였다(9.28).

한편 미의회는 박정권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대한상품지원원조를 삭감안을 제출하고 행정부는 박정권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보완 법안의 제출을 연기하는 등 압력을 가하였다(2.26, 7.4, 9.15, 12.5 등).

이런 상황에서 전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망명과 김대중암살기도사건에 대한 증언 등은 박정권을 더욱 궁지로 몰아갔다(7.4, 7.25, 10.7, 10.12 등). 또 이 해 3월 카터는 미 지상군을 4∼5년에 걸쳐 철수한다고 발표하였는데, 박정권은 이 발표가 박정권에 대한 지지 철회로 비춰질 것을 우려해 이에 대한 외신보도를 통제하였다(3.8, 5.11, 5.16, 6.6 등).

한편 이 해 후반기에 들어와 10.7의 서울대 데모(11.30)에 이어 연대에선 ‘민주수호결사투쟁선언’이 발표됐다(10.25). 또 전태일분신사건으로 유명해진 청계천 평화시장노동자들의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한 9.9투쟁도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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