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벌써 한해가 저물고 1996년이 시작됩니다. 정말 지난해는 지루한 일년이었습니다. 언제나 9시뉴스가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믿을 수 없는 반전을 거듭하고, 막판에는 뭔가 뭔지 알 수 없는 ‘포스트모던’한 엔딩으로 치달렸습니다.

다리가 무너지고(지난해 다리가 무너진 영화는 한편도 없음), 아파트가 무너지고(지난해 빌딩이 무너진 영화는 한편도 없음), 전직 대통령이 뇌물로 감옥에 가고(지난해 황당무계한 코미디는 많았으나, 스위스 로케까지 간 영화는 한편도 없음), 80년 쿠데타에 관한 논의가 새로 시작됐습니다(올해 독립영화 중 정치기금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한편도 없음).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앞에 있었고, 영화는 그저 멍청하게 구경하고 있습니다.

95년은 모두들 영화 탄생 일백년이라고 전세계 영화인들의 단결(!)과 연대를 이야기했습니다. 영화는 비로소 한세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 함께 새로운 두번째 세기의 첫번째 일년을 시작하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영화보다 현실이 재미있는 ‘저주받은’ 이 땅에서 영화를 하는 것은 점점 더 영화와 현실의 괴리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김형, 올해도 한국은 할리우드 영화를 사랑하는 전세계 국민 중 8위를 차지했습니다(1위는 독일, 2위는 일본). 참으로 놀라운 세계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사랑하는데도 한국영화 편수는 줄었습니다.

이제는 스크린 쿼터제를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쑥스럽게 됐습니다. 걱정을 참다 못한(?) 기업들까지도 영화를 하겠다고 차례로 충무로로 뛰어들고 있는데도 도무지 잘 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독립영화들은 이미 진보의 이름을 내걸만한 몇몇 모임(노동자뉴스제작단, 푸른 영상, 서울영상집단, 보임)을 제외하고는 어줍잖은 실험과(세기말?) 인기에 영합한 소재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법이 개정되기는 했지만, 거기서 더 나아진 현실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독립영화들은 ‘명백히’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여전히 심의라는 이름을 빌린 검열은 시퍼렇게 가위날을 세우고 버티고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은 더 많은 동료들을 ‘불법업자’로 만드는 것 뿐입니다.

이제 영화평론가로서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영화의 일백일년이 되는 1996년은 할리우드 영화에 심취한 대중에게 계몽주의자가 되어야 하며, 가위를 든 자들에게는 독설가가 되어야 하며, 기업의 편에 선 장사꾼들에게는 노동조합과도 같은 영화현장의 친구들과 함께 ‘제 3자 개입’일 수 밖에 없으며, 그리고 독립영화 진영을 위해서는 ‘불법 영세업자’의 변호를 맡아야 합니다.

영화평론가는 여기서 한가하게(이런!) 평론이나 할 시간이 없습니다. 김형, 이게 한국에서 1996년 한햇동안 해야 할 일입니다. 어쨌든 올해에도 영화 ‘평론가’가 되기는 틀린 모양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제가 서 있는 현실이지 꿈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엉망진창인 현실에서도 이렇게 영화에 인사할 참입니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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