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천안함 침몰은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과 똑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그 의미와 의도에 관심이 집중된다. 러시아의 핵잠수함인 쿠르스크호는 2000년 8월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훈련 도중 가라앉았는데 그 원인이 2년 가까이 밝혀지지 않았다. 러시아는 사고 직후 정찰 중이던 미군 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내부에서 연료가 유출돼 폭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18일 브누코프 대사를 만나 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최 의원에 따르면 브누코프 대사는 "이번에 한국에 파견된 3명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과거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을 조사했던 당사자들"이고 "천안함 침몰은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과 똑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누코프 대사는 "객관적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를 정하고 결과가 나오면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당수 언론에서 브누코프 대사가 천안함이 내부 폭발로 침몰했다고 주장한 것처럼 해석하고 있지만 발언의 함의를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에 조사위원으로 참석했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과 똑같다는 말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사건의 실체가 다를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내부 폭발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합조단의 조사 결과가 틀렸다는 우회적인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신 대표는 "누구나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천안함 절단면에서는 외부든 내부든 폭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서 "러시아 조사단도 이를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러시아 대사가 쿠르스크호 이야기를 꺼낸 건 천안함 침몰 사고가 천안함 내부, 천안함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문제제기인 동시에 러시아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경고의 의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대표는 "천안함 사고 지점에서 건져올렸다는 어뢰 추진체가 발견되긴 했지만 정작 천안함에서는 피격의 징후를 찾을 수가 없다"면서 "이런 어설픈 증거와 논리로는 전문가들을 결코 설득시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브누코프 대사는 완곡한 표현으로 전면 재조사를 요구한 것"이라면서 "이미 천안함 진실 공방이 국제 사회로 옮겨간 상태에서 부실한 조사 결과를 근거로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데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의 해석은 러시아는 천안함의 진실을 알고 있지만 국제 관계를 고려해 아직 밝히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신 대표는 "쿠르스크호가 내부 폭발로 침몰했다는 사실 보다는 외부 공격으로 책임을 떠넘기려 하다가 2년 만에 진실이 드러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합조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라며 내세운 증거들이 모두 뒤집힌 상태"라면서 "진실을 공개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 조사단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7일까지 일주일 동안 머무르면서 생존자들을 면담하고 합조단의 설명을 들은 뒤 조사자료를 넘겨 받아 돌아갔다. 최 의원에 따르면 러시아 조사단은 대략 2~3주 후에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천안함 특위도 다음주 화요일 속개된다. 이날 회의에서는 최근 드러난 알루미늄 산화물 조작 관련 이슈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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