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 정비 사업’이 기로에 섰다. 6·2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지만, 청와대는 4대강 사업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4대강을 둘러싼 언론의 아젠다 경쟁이 열기를 더하는 가운데 월드컵 국면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 편집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이 원하는 변화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듣도록 하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오전 8시 KBS 1TV가 생중계 하는 가운데 ‘6·2 지방선거’ 견해를 밝히는 방송연설을 진행했다. 이 대통령 발언만 놓고 보면 지방선거 민심을 국정운영에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실제로 세종시 수정 문제는 추진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국회가 이번 회기(6월 임시국회)에 표결 처리해주시길 바란다”면서 “정부는 국회가 표결로 내린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민심 수용, 4대강 사업은 예외?=이 대통령 발언은 세종시 수정 포기를 위한 ‘출구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은 충청권(대전 충청남도 충청북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충청권 민심을 돌리지 못하면 2012년 19대 총선, 2012년 대선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위기신호로 이어졌다. 지방선거를 통해 세종시 추진 동력은 사실상 상실됐다. 세종시 수정을 사실상 포기한 결정은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대통령 연설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 최대 쟁점 중 하나였던 4대강 사업은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지만 먼 훗날이 아니라 바로 몇 년 뒤면 그 성과를 볼 수 있는 국책사업”이라고 당위성을 재차 강조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이 대통령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는 오만과 독선의 국정운영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대강 사업 강행은 종교계를 중심으로 거센 저항의 물결을 불러왔다.

▷MB정부 ‘4대강 버티기’ 성공할까=경북 군위 지보사 문수스님은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5월31일 “4대강 사업 즉각 중지, 폐기하라”는 유서를 남긴 채 ‘소신공양(燒身供養)-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침’을 선택해 충격을 던졌다. 유권자 2116만 2998명이 참여한 6·2 지방선거는 한나라당 참패로 끝이 났고, 여당 내부에서도 일방통행 국정운영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방선거 참패 이후 오랜 침묵을 이어간 끝에 내린 결론은 ‘4대강 사업’ 중단 없는 추진이었다. 이에 따라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여론전도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정부의 소통과 설득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4대강 홍보에 더욱 힘을 쏟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4대강 사업 버티기는 임기 절반이 남은 대통령의 승부수로 볼 수도 있다. 세종시 수정이 물 건너가고 4대강 사업마저 좌초된다면 국정주도권을 빼앗기면서 레임덕을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경기도 여주 남한강 4대강사업 현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언론 ‘4대강 강행 반대’에 무게=청와대 버티기가 성공하려면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지방선거 이전과 이후는 정국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언론 환경도 청와대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언론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청와대와 발을 맞추던 언론들은 여론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한겨레는 지방선거가 여당 참패로 끝이 나자 4대강 이슈를 연일 1면 머리기사로 배치하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한겨레는 4일자 1면에 <야권 단체장 ‘4대강 제동’ 시작됐다>라는 기사를 내보냈고, 7일자 1면에 <청와대, 4대강 ‘가던 길 간다’>, 9일자 1면에 <‘4대강 사업 반대’ 고삐 죈다>라는 기사를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또 10일자 1면에는 <4대강 준설토 적치장 ‘강행’>, 15일자에는 <세종시 국회로 떠넘기고 4대강 강행 불변>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겨레는 15일자 <선거민심에 귀 닫은 이 대통령 연설>이라는 사설에서 “4대강 사업에 관한 한 국민의 반대가 아무리 거세도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완고한 고집이 묻어난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15일자 사설에서 “4대강 개발 중단 요구는 이제 국론통일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왜 강행 의사를 꺾지 않는지 모를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4대강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것도 6·2 지방선거 결과 일반 여론조사 결과 등에서 나타난 민심과는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국면이 변수=청와대가 ‘4대강 GO’를 선택한 배경에는 월드컵에 국민 시선이 쏠린 상황도 고려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대통령의 4대강 사업 강행 선언은 지방선거 민심을 외면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월드컵 열기에 묻혀 비판 여론을 피해갈 수 있었다.

야권과 종교 시민단체들은 15일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 사업 저지 결의문을 발표했다. 범국민 기구를 결성해 4대강 저지에 힘을 쏟고, 야권 광역단체장들과 연계해서 정부의 4대강 사업 강행에 맞서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러나 6월17일(목), 6월23일(수)로 예정된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조별예선을 전후로 해서는 여론 시선이 월드컵에 쏠릴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고 8강까지 오를 경우 6월 말이나 7월 초까지 전국이 월드컵 열기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소신에 국민의 뜻이자 민심이 굴할 수 없다. 민심이 우선이라는 원칙이 확고하게 실천돼야 한다”면서 “민심을 무시하고 불도저로 그냥 4대강 밀어버리겠다고 하면 수장 당할 각오를 하고 배수진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에서는 결사항전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월드컵 열기가 가라앉은 후에야 여론의 동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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