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은 <시>에서 잘못에 대해 어찌해야 하는 지를 이야기한다. 미자(윤정희)는 생활보조금과 간병 도우미 겸 파출부 일을 해가며 외손자까지 거두느라 어렵게 살아간다. 미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손자 종욱이(이다윗)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가 저지른 잘못을 알게 되었을 때, 미자가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자신이 치매 판정을 받아도, 간병 도우미를 나가는 집 중풍 노인(김희라)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어떻게든 이겨내던 미자가 손자의 허물 앞에서, 무엇보다 손자가 저지른 죄로 희생당한 어린 여학생 앞에서 터뜨리는 울음은 절절하다.

미자는 그저 우는 것으로 자기 몫의 고통을 다했다고 넘어가지 않는다. 바로 잡아야 할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미자가 겪어낸 고통 끝에 한 다발의 꽃과 한 편의 시가 남는다. 미자는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보았으면 알아야 하고, 알았으면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애달프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전한다.

   
  ▲ 영화 '시'  
 
   
  ▲ 영화 '시'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하나 없이 손글씨로 크레디트를 새기고, 영화 안 공간에서 울리는 사운드로서의 음악 말고는 분위기 돋우는 배경 음악도 따로 깔지 않고, 현란한 디지털 기법이나 광학 효과 대신 우직하게 컷과 컷을 이어붙인 편집으로 완성된 영화 <시>는 블록버스터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 개인의 시선과 철학이 관객과 소통이 어렵도록 만드는 난해한 영화도 아니다. 그런데 흥행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관객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상영 시스템이 문제다. 칸에서 기립박수를 몇 분을 받았는지, 무슨 상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 어떤 상영관에서 어떤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지가 문제인 것이다. 가뜩이나 적게 배정된 스크린에 교차 상영까지 하면서 흥행에서 외면당했다고 하는 건, 영진위 공모에서 빵점으로 탈락시켜놓고 지원이 없더라도 나가서 잘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자식의 잘못을 알게 된 엄마(김혜자)는 그 잘못을 덮으려다 살인까지 저지르는 ‘어미’가 되지만,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미자는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존재를 걸고 고통을 겪어내는 ‘어버이’가 된다. 그 고통 끝에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라는 진심어린 시가 나오게 된다.

제63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시>를 두고 함께 경쟁부문에 나섰던 <하녀>와 비교하며 ‘평론에서는 승리, 흥행에서는 부진’이라느니, ‘작품상이나 여우주연상을 기대했는데 각본상에 그친 것이 아쉽다’느니 하는 말들이 무성하다. 정작 감독 자신은 상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공감의 폭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꼭 무슨 상을 받느냐를 두고 설레발치고, 결과에 연연하면서 수상에 대해 압박을 한 것은 오히려 언론이었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윤정희와  이창동 감독.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한 이창동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 먼저 소설가였고, 자신의 작품마다 직접 시나리오를 써왔으며, 그렇게 만든 영화마다 늘 진지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 세계를 만들어 온 감독이다.

그런데 영진위는 편당 5억 원 상당의 현금 및 현물 지원을 하는 마스터 영화제작 지원사업 공모에서 <박하사탕>과 <밀양>의 이창동 감독이 지원했던 <시>를 ‘빵점’으로 탈락시키고, 대표적인 우파 영화단체인 한국영화감독협회 상임고문인 김호선 감독을 선정했다. 원래 마스터 영화제작은 각각 두 편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굳이 이창동 감독의 <시>를 탈락시키고, 김호선 감독만 단독 선정한 것 자체가 어이없는 것이었다.

현 정권 들어 문화와 예술, 언론에 대한 제재와 억압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제대로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문화, 예술, 언론은 편안함 뒤에서 일렁이는 불안한 징후들을 미리 짚어내어 펼쳐 보이는 시선과 목소리를 지녀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정권은 모든 것을 억지로 들쑤시고 갈아엎겠다며 ‘잃어버린 10년’ 어쩌고 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강물의 자연스런 흐름도 바꾸려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저항의 글쓰기’로 문제를 지적하고, 영화인들은 ‘영화진흥위원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영화인 1000인 선언’으로 비정상적인 현 정권의 영화정책이 바로잡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영화 '시'  
 
   
  ▲ 영화 '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차승재 대표, <괴물>, <마더>의 봉준호 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 <호우시절>의 허진호 감독,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전우치>의 최동훈 감독 등 상업 영화 제작자와 감독을 비롯해 <워낭소리>를 제작한 고영재 프로듀서,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만든 변영주 감독, 그리고 한국 다큐멘터리의 고전 <상계동 올림픽>과 <송환>의 김동원 감독 등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까지 여러 분야의 영화인들이 한꺼번에 뜻을 모으는 일은 드문 일이다.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나 제작자 말고도, 독립영화인과 영화학도들까지 이름을 올렸다. 영화라는 분야가 워낙 일사분란하게 조직화된 곳이 아니라 작품별, 프로젝트별로 제각기 활동하는 작가와 스태프들이 많다보니 뜻은 있어도 선언에 미처 함께 하지 못한 사람까지 고려하면 거의 모든 영화인들이 지금 돌아가는 영화 정책을 위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진위는 이런저런 공모에서 탈락시킨 독립영화협회나 미디액트, 이창동 감독 등에 대해서 ‘워낙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사람들이니 더 이상 지원이 없더라도 나가서 잘하리라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겉으로 내세우는 말치레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영화계 ‘좌파척결’이라는 색깔론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미 올해 초 영상미디어센터 지원사업과 독립영화 전용관 사업자 선정 등에서 공정성도, 논리도 없는 행태로 문제를 일으켰던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2010년 상반기 독립영화 제작지원’ 예심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넣어 심사에 참여했던 예심 심사위원장인 황규덕 감독을 비롯한 심사위원 9명 전원이 보도자료를 내고 조 위원장의 외압 사실을 폭로하며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마침 심사 시기가 칸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칸에 출장 중이던 조 위원장이 심사위원 7명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내부 조율’이 어쩌고, ‘밸런스니 균형배분이니’가 저쩌고 하면서 특정 작품을 제작지원작으로 뽑아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황 감독 등 심사위원단이 밝혔듯 ‘조 위원장의 이러한 행위는 심사위원 모두에게 인격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것’이며 ‘공정 심사라는 대의명분 자체를 거스르는 중대한 도발’이다.

그러나 조희문 위원장은 지금껏 사죄는커녕 ‘유감’이라는 오만하고 부도덕한 말로 넘어가려 한다. 위원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걸고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해야 할 사람이 고작 ‘심사위원들이 인격적 모욕과 부당한 개입으로 느꼈다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만나 사과할 의향은 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영화 정책 전반을 책임지고 끌어나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 모양이다. 결국 13개 단체 영화인들이 조 위원장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로서 보고도 알려 하지 않고 알고도 실천하지 않는 짐승같은 본능에 매달리는 ‘어미’가 될 것인가, 잘못을 제대로 짚어보고 바로 잡아 세상에 아름다운 시를 남기는 ‘어버이’가 될 것인가는 우리 몫이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는 <시>와 같은 영화를 또 볼 수는 나라를 만들 수도 있고, 그런 영화를 묻어버리는 나라를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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