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 폐해 현실로, 북풍 집중 부각

교육감 정보제공 불충분 ‘로또 선거’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지난 20일 시작됐지만, 언론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이명박 정부 ‘천안함 활용법’에 발을 맞춰 연일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국내 최대규모의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지방선거는 ‘묻지마 선거’ ‘로또 선거’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강요된 선택’을 언론이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 편집자

오는 6월2일 제5회 동시지방선거는 ‘1인 8표’를 선택해야 하는 복잡한 선거이다. 교육감과 교육의원을 주민 직선제로 동시에 선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웬만큼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헛갈릴 수밖에 없는 생소한 선거이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A씨 경우를 예로 들면, △서울시장 △종로구청장 △서울시의원 △종로구의원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종로구의회 비례대표 △서울시 교육감 △서울시 교육의원 등의 투표권한이 주어진다.

언론의 역할은 선거의 정책의제를 설명하고 후보자 선택을 위한 주요 정보를 유권자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그런 역할을 게을리 한다면 유권자는 투표 불참을 하거나 ‘묻지마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후보자의 공약이나 자질과 무관하게 추첨으로 뽑은 기호가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교육감 후보는 정당 추천과 무관한데 투표용지 첫 번째 이름을 올리는 후보는 한나라당, 두 번째 이름을 올리는 후보는 민주당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시장은 ‘묻지마 선거’, 교육감은 ‘로또 선거’

진보·개혁진영 단일후보로 나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기호 7번을 뽑은 이후 비상이 걸렸다. 곽노현 선거대책위원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교육감 기호와 투표는 정당과 무관함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로또 투표’를 차단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언론이 지방선거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지난 20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일주일 가량 시간이 흘렀지만, 주요 신문과 방송의 주된 관심사는 지방선거가 아니라 천안함 침몰 사건이다.

   
  ▲ 25일 오전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열린 ‘천안함침몰사건 관련사회단체 비상시국회의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천안함 침몰을 ‘북풍’으로 연결하려는 정부와 여당을 규탄하고 있다.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명박 정부가 공식 선거운동 당일인 5월20일 천안함 사고원인 발표를 강행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5월24일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앞으로도 천안함 관련 외교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일정에 발맞춘 정부의 천안함 이슈 부각은 효과를 보고 있다. KBS <뉴스 9>는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메인 뉴스를 천안함 관련 소식으로 장식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20일에는 26개 꼭지의 천안함 뉴스를 연이어 내보냈고, 지방선거 소식은 27번째 뉴스로 다뤘다. 동아일보는 선거운동이 시작된 20일부터 25일까지 1면 머리기사를 천안함 관련 소식으로 채웠다.

안보정서 자극, 여당 안정론 띄우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론 대부분이 KBS·동아일보와 유사한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천안함 이슈’를 띄우는 홍보프레임은 여권 선거 전략의 일환이다. 한나라당 종합선거상황실이 만든 ‘6·2 동시지방선거 종합상황보고 D-11’이라는 제목의 대외비 문건에는 “천안함 이슈를 여야를 초월해야하는 ‘국가안보이슈’로 규정짓고 국민들에게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천안함 사건도 일어난 마당에 정치권이 싸워서 되겠느냐는 그럴듯한 주장은 여당의 선거 전략인 ‘안정론’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 또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향해 색깔론 공세를 가하면서 선거에 이용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25일자 <천안함 진실 매도하며 북 편드는 반 대한민국 세력>이라는 사설에서 “8일 앞으로 다가온 6·2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반대한민국 세력’에 어떤 심판을 내릴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선거’는 유권자에게 특정한 선택을 강요하는 행태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부 보수신문은 물론 공정성이 생명인 방송마저 이런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MB심판 국민위원장’인 천정배 의원은 “최근 KBS를 중심으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정부 여당을 위한 편파·왜곡보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 국민을 향한 국민의 방송이 아닌 정권을 위한 정권의 방송으로 전락한 방송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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