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김동식과 안기부가 지난해 12월 8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과 지난 92년 10월 안기부가 발표한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수사결과(이하 수사 결과) 발표내용의 차이에서 제기되는 의혹의 출발점은 ‘김동식과 김돈식이 과연 동일인물인가’하는 점이다.

안기부는 “김동식과 김돈식은 동일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난 해 12월 8일 김동식과 안기부의 발표 내용을 92년 당시 안기부의 <수사결과>와 비교해 볼 때 김동식과 김돈식이 동일인이란 안기부의 주장에 몇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김동식과 안기부는 12월 8일의 기자회견에서 1차 남파된 시점이 90년 5월 30일이었으며 주요 임무로는 당시 민중당 손병선씨에 대한 지도 교육및 이선실과 함께 중부지역당을 구축한 후 이선실과 황인오를 대동 월북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92년 안기부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동식은 손병선을 조직 지도했고, 김돈식은 황인오를 조직 지도한 것으로 밝히는 등 김동식과 김돈식을 분명히 다른 사람으로 적시하고 있다. 더욱이 92년의 <수사결과>는 김돈식의 남파 시점을 90년 2월이라고 밝혔으나 김동식은 자신의 남파 시점을 90년 5월이라고 밝혀 동일인물일 수 없다는 논리를 강하게 뒷바침해주고 있다.

또한 이번 간첩 김동식 사건의 주요 관심사였던 이선실과 황인오 대동월북과 관련해서도 김동식과 안기부의 발표는 92년의 <수사결과>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김동식은 이때 이선실, 권중현과 함께 신촌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북한 연락 공작원 접선 장소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던 황인오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92년 <수사결과>는 권중현과 황인오가 한조를 이뤄 접선 장소로 이동했고 이선실과 김돈식이 또 다른 한조를 이뤄 접선 장소에 만났다고 돼있다.

만일 김동식이 진짜 김돈식이라면 자신이 이때 누구와 함께 접선장소로 이동했는지 기억 못할리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안기부의 발표대로라면 김동식은 자신이 5년전 손병선에게 전달한 12개 품목의 간첩 장비에 실탄 12발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기억할 만큼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김동식과 김돈식이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의혹은 92년 <수사결과>에서 김돈식과 김동식의 인상착의가 분명히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제기된다. 당시 사건 관련자들은 김돈식은 20대로 키는 173cm정도였으며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임을 자처했다고 밝힌 반면 김동식은 30대로 165cm의 키로 경기도 말씨를 쓴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에 부여간첩으로 검거된 김동식은 168cm의 키에 느린 서울·경기지역 말씨를 사용한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안기부는 이같은 착오를 간첩수사의 어려움 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김동식과 관련 불고지죄로 구속된 사람들에 대한 무리한 수사가 비판을 받고 있을 뿐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간첩 김동식 사건에 의문점을 표명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안기부의 보다 분명한 해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