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민주당-국민참여당 경기지사 단일후보로 선출된 것은 2010 지방선거 최대의 '반전드라마'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주요 광역단체장 경선을 진행하기는 했지만, 언론을 화들짝 놀라게 한 경선은 경기지사 경선 정도이다.

유시민 전 장관은 높은 대중적 인기와 지명도를 지닌 인물이지만, 신생정당인 국민참여당 소속이다. 반면, 김진표 민주당 최고위원은 경기도 수원 영통이 지역구인 국회의원인데다 누구보다 더 오랫동안 경기지사 후보를 준비해온 인물이다.

민주당은 경선 패배를 상상하기 어려웠고, 한명숙-김진표-송영길 수도권 삼각편대를 통해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민주당 맞대결 구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민주당 구상의 한 축은 무너졌다. 지방선거 핵심 지역인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놓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인사들이 2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최근 발간한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 등 책 4권을 헌정(獻呈)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 입장에서는 속이 쓰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경선 결과를 보면서 비상신호가 감지되는 쪽은 한나라당이다. 유시민 후보가 반전의 드라마를 만들며 경기지사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되면서 밋밋하던 선거 흐름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기본적으로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게 지방선거 특성이다. 여당은 그동안 시정·도정 운영 성과를 홍보하면서 야권의 공격에 차단막을 쳐야 치러야 승산이 높다. 선거 열기가 불붙는 것은 여당이 원하는 구도가 아니다.

현실 정치에서 선거판을 뒤흔들 수 있는 흥행 보증수표를 꼽으라면 여권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야권에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두 사람 모두 정치권에서 손꼽히는 열혈 지지층을 보유한 정치인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유시민 전 장관은 직접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다. 유시민 후보의 경선 승리는 정치 무관심층, 투표 무관심층을 흔들 수 있는 요인이다. 진보성향 유권자들 역시 유시민 등장에 주목할 가능성이 크다.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 입장에서는 조용히 안정적으로 선거를 끝내려던 구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시민 변수가 경기도에서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무죄 판결로 지방선거 흥행몰이의 주인공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천안함 변수' 때문에 바람몰이에 어려움을 겪었다.

   
  ▲ 유시민(사진 왼쪽) 국민참여당 경기지사 후보와 김진표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연합뉴스  
 
그러나 유시민 후보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유시민-한명숙 후보가 지방선거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노풍'이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충남(안희정), 강원(이광재), 부산(김정길), 경남(김두관) 등 친노무현 후보가 출마한 각 지역의 선거 판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김진표 민주당 후보가 박빙의 승부에서 졌지만,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했고,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유시민 후보 승리를 위해 민주당도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유시민 변수'는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고민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후보는 열성적인 지지층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지만, 정치권 안팎에 비토정서도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로 유시민 후보가 선거에 나서면 국민 다수의 보편적 지지를 얻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민주당 쪽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없지는 않다.

정치권과 언론 일각의 이러한 분석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만, 한계도 있다. 지방선거 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투표율은 50% 안팎이다. 4년 전 지방선거 전체 투표율은 51.6%로 조사됐다.

다시 말해 유권자 100명 중 50명은 투표장에 가지만, 50명은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경기도 투표율은 전체 평균보다 더 낮았다. 2006년 지방선거 경기도 투표율은 46.7%로 나타났다.

유권자 절반만 투표장에 간다는 의미는 두터운 적극적인 투표층을 지닌 인물이 유리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최근 각종 재보선에서 투표율이 20%, 30%대로 나타났는데도 야당이 승리한 결과는 '낮은 투표율=한나라당 유리'라는 선거공식을 깨뜨렸다.

   
  ▲ 지난해 10월9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운동장에서 열린 노무현재단 출범기념 콘서트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하모니카 연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10월28일 열렸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여야 판세를 갈랐던 핵심 지역은 수원시 장안구였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가 강한 곳이었다. 한나라당은 방송인 출신인 박찬숙 전 의원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중앙 정치무대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이찬열 후보를 내세웠다. 선거 2∼3주전만 해도 민주당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에 20% 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지지율에서 밀렸다. 하지만 투표 당일 개표함을 연 결과 민주당 후보는 49.2%, 한나라당 후보는 42.7%를 득표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보기 좋게 빗나갔고 민주당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를 6.5% 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한나라당 텃밭 수원 장안의 여당 패배는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당시 투표율은 35.8%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낮은 투표율은 더는 한나라당 승리 공식이 아니다. 재보선과 마찬가지로 투표율이 낮은 지방선거(2006년 경기지사 투표율 46.7%) 판세를 좌우할 변수는 적극 투표층이다.

유시민 후보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외의 패배를 당한 민주당 쪽의 허탈함을 달래줄 정치적 포용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안동섭 민주노동당 후보,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와 제2의 단일화를 성사도 정치적 과제로 남아 있다.

한나라당은 유시민 단일화가 선거판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옥임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국민들로부터 정치적으로 퇴출됐던 인사들이 보란듯이 관뚜껑을 들고 어슬렁거리고 있다"면서 "국민에 심판 받은 노무현 정권 컴백쇼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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