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9일로 예정된 연두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하고 이를 국정연설로 대신한 것과 관련, 대선자금 문제 등 민감한 정치현안 비켜가기라는 지적과 함께 국민들의 알권리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김대통령은 특히 전직 두대통령 문제가 정치현안으로 부상한 지난 11월 이후 서울신문 등 몇몇 언론사와의 창간기념 대담마저 연기하고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도 일체 갖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지나치게 언론을 기피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김대통령은 9일 오전 10시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된 ‘새해 국정연설’을 준비한 연설문만 낭독한 후 참석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은 채 끝냈다. 기자들도 일부만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대통령이 새해 정국구상을 밝히는 연두기자회견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비롯, 내외신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30분정도의 ‘국정연설’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형식으로 이뤄져 왔다.

청와대측은 회견일을 불과 나흘 앞둔 지난 5일께 취소사실을 기자들에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런 기자회견 불가방침을 통보받은 출입기자들은 김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 구속과 자신의 대선자금 문제 등 민감한 청치현안을 비켜가기 위해 오랜 관행을 깬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후 출입기자들을 비롯, 언론계에선 적잖은 비난의 소리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우선 청와대측이 겉으로는 ‘과거청산’ ‘검찰의 수사 존중’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김대통령 스스로 ‘정면돌파’를 하지 못할 곡절이 있어 언론을 기피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서로 만나고 안만나는 것을 언론의 ‘취재대상’ 중의 한 사람인 대통령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는 점도 제기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역사바로 세우기’를 주창하며 두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가한 이후 스스로 언론에 ‘정쟁’의 당사자로서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온 게 사실이다. TV화면을 통해서도 그는 늘 소란스런 정국과는 한발치 떨어진 곳에서 민생을 보살피고 국정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는 게 정치권과 언론계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이런 탓에 김대통령의 언론기피증은 그의 ‘소신’이라고 평가되기 보다는 ‘정략적 계산이 깔린 제스쳐’로 비춰진다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김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지난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이후 매월 한차례 정도 있었던 ‘출입기자 간담회’가 사실상 사라진 것과 궤를 같이하는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 기간중에 창간(창사)기념 인터뷰를 요청한 서울신문과 연합통신의 제의도 “민감한 정치사안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하기도 했다.

6공 때부터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는 “연두기자회견 관행이 이런식으로 일방 파기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김대통령이 중요한 시기에 기자들의 접촉을 기피하는 것은 국민들의 알권리를 차단하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와관련 청와대의 한 인사는 “신년초와 취임기념일인 2월25일 두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에서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연두기자회견을 하면 사정문제나 두 전직대통령 처리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이 당연히 나올텐데 지금으로선 김대통령이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이 검찰의 독립적인 수사를 지켜주는 것으로 판단, 기자회견을 생략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취임 기념일인 오는 2월25일에 맞춰 별도로 기자들과의 만남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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