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 9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찰은 반성이 없다. 다시 언론플레이에 들어갔다. 언론은 검찰 비판을 주저한다. 국민 머릿속에 남는 것은 정치인의 ‘범죄혐의’에 대한 잔상이다. 무죄 판결에도 정치적 상처가 남는 이유이다. 검찰은 절반의 승리를 거둔 것일까. -편집자

지난해 5월2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현장에서 언론은 공공의 적이었다. “언론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였다.” “XX일보 놈들 나한테 잡히기만 해봐라. 여기에도 분명히 있는 것 안다.” 사람들은 격앙됐다. 울분을 참지 못했다. 소속 언론사 로고가 찍힌 기자증을 자신 있게 들고 다니는 기자는 거의 없었다. 언론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한 일을 알기 때문이다.

언론은 검찰의 언론플레이에 발을 맞췄다. 각종 피의 사실은 ‘기정사실’이 돼서 언론에 보도됐고 ‘인격 살인’ 보도도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충격적 상황에 직면하자 언론 내부에서도 자성론이 일었다.
“검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한 채, 진실에 접근할만한 충분한 검증조차 없이 기사를 쏟아냈고 수사 대상자의 인권은 아예 배려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28일자 한 일간지의 사설 내용이다.

   
  ▲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전직 총리 체포 영장 집행하더니 ‘무죄’

‘한명숙 사건’은 검찰과 언론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줬다. 검찰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2006년 12월20일 총리 공관에서 5만 달러(당시 환율로 5천만 원이 안됨)를 건넸다는 주장을 근거로 한 전 총리를 압박했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천만번 물어도 아니다.” 한 전 총리는 한결같이 혐의를 부인했지만, 언론은 검찰 언론플레이에 발을 맞췄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전직 총리를 상대로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초유의 일을 벌였다. 조선일보는 12월19일자 3면에 <‘뇌물혐의’로 체포된 첫 총리>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 전 총리는 이미 뇌물을 받은 인물로 언론에 그려졌다.

한 전 총리가 ‘정치수사’에 대한 항의표시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도 언론은 부정적으로 봤다. “국민 앞에 떳떳하다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은 재고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서울신문 지난해 12월19일자 <국민은 한명숙 금품수수 실체가 궁금하다> 사설 중 일부)

“(검찰은) 혐의입증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한 전 총리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재판에서 불리한 정황.”(동아일보 지난해 12월21일자 8면 <한 전 총리 주내 불구속 기소> 기사 중 일부)

검찰과 언론의 이러한 예상과 달리 법정 공방은 검찰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뇌물사건은 진술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중요한데 곽영욱 전 사장은 법정에서 검찰의 강압수사를 거론하면서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한 전 총리의 ‘골프 의혹’을 다시 제기하며 반전을 노렸다. 본질과 무관한 내용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았지만 언론은 검찰 주장을 충실히 보도했다. 

무죄 판결에도 검찰은 남는 장사?

국민일보와 GH코리아가 공동으로 지난 10일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를 벌인 결과,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57.9%로 필요하지 않다(20%)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한 전 총리의 이미지 변화를 물은 결과 “도덕적 문제가 알려져 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의견이 39.2%, “야당 탄압 피해자여서 전보다 더 호감을 갖게 됐다”는 의견이 30.9%로 조사됐다. 법원은 지난 9일 한 전 총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검찰은 도덕성 의혹을 부풀리는데 성공한 셈이다.

검찰 입에 의존하는 언론의 취재 관행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검찰의 ‘언론플레이 수사’는 바뀌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은) 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흔들기 위해 끊임없이 언론플레이 공격전을 펼치고 있다”면서 “수사는 부실하게 하고 여론조작과 홍보에만 능하다는 평을 듣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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