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씨에 대한 언론계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조선(북한)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비서의 처조카라는 언론사가 군침을 삼키기에 충분한 특수신분을 이용해서 언론사를 상대로 ‘위험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 성혜랑씨와 이모 성혜림씨의 신변안전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 모스크바 탈출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가족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는 비난도 뒤따른다.

이씨도 자신에 대해 이같은 냉랭한 시각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상이 역력했다.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씨는 이런 평가에 대해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엄마와 이모의 탈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다. 신문을 보고 알았다.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엄마와 이모 일행이 ‘안전하게 정착한 후’ 기사를 쓰기로 조선쪽과 약속했다. ‘안착’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아들과 조카로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항변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안기부쪽에서도 어느정도 확인해주고 있다. 안기부는 조선의 보도시점과 관련, 3월 중순 이후에 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고 조선일보도 이를 양해했다고 밝히고 있다. 3월 중순이후라는 시점은 보통 망명자가 탈출후 안전하게 정착하는데 최소 1-2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성씨일가는 1월20일 모스크바를 탈출했다.

“나도 3월달이나 돼야 보도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조선과 안기부가 그렇게 하기로 협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고 나하고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조선일보측의 주장은 틀린다. 기사를 쓴 우종창기자는 “기사가 나가기 전에 알려줬다. 테이프 제작문제까지 상의했다”고 이씨의 말을 반박했다.

그는 언론사와의 접촉 과정에서 몇차례 사례비를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언론사에 먼저 돈을 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다. 현재 부도가 나서 무척 어려운 상태이고 엄마와 이모의 탈출 보도가 나가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떠돌이 신세라는 사정을 알고 언론사가 격려금조로 얼마씩을 줬다”

기자들의 애기는 좀 다르다. 그가 은근하게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한 기자는 “사례비를 주지 않으면 그와 접촉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말에도 앞뒤가 안맞는 대목이 있다. 그와 대담을 한 대부분의 언론사는 자사와 관련해서는 “그야말로 식사비나 격려비조로 주었을 뿐이다. 거액이라는 말은 말도 안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다른 언론사에 대해서는 “우리와 다르게 거액을 준 것이 확실하다”고 목에 힘을 주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그가 시급히 갚지 않으면 안되는 악성채무에 시달려 왔다는 소문이 거의 정설처럼 나돌고 있다. 5천만원이라는 구체적 액수까지 제시되고 있다. 그가 언론사를 찾았던 지난해말에는 채권자들이 집에까지 몰려왔을 정도라는 것이다.

“KBS에서 주택조합 일을 하다가 사기꾼한테 속아 덤터기를 썼다. 이용만 당했다. 난 결백하다. 법원도 인정했다. 1심에선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10개월만인 93년1월 출감하고 보니 집은 이미 경매에 넘어갔고 말이 아니었다. 출감후 안기부로부터 한달에 몇십만원 정도 생활비를 지원받았는데 이마저 곧 끊어졌다.”

관계당국에 도움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 포장마차라도 해서 먹고 살아라”라는 냉정한 말만 들었다고 했다.

이런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그는 언론사와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특별한 삶과 이로 인해 얻은 조선(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일비서와 그 주변의 정보를 수기로 엮으면 돈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같은 언론사와의 접촉 과정에서 성혜림씨의 모스크바 전화번호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82년 한국에 들어온지 13년만에 이모인 성혜림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처자식을 굶길 수 없었던 것’이 모스크바와의 통화를 생각하게된 계기라고 대답했다. “엄마나 이모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북한에서 귀공자로 자란 그에게 무일푼의 상황은 절망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구속과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쪽에서의 생활에 환멸을 느꼈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모스크바에 연락을 취할 당시만 해도 “엄마가 모스크바에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연하게 통화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이 통화가 이루어진후 그는 “엄마가 보내준 돈으로 모든 빚을 정리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빚을 갚기위해 언론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의심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빚때문에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다닌다고 보지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다. “경쟁에 치우친 나머지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러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A라는 언론사가 이렇게 쓰면 B라는 언론사는 저렇게 쓴다. 사실은 하나인데 다르게 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보도의 구체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피했지만 이모 성혜림씨의 호칭 문제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지도자와 같은 관저에서 살았고 김정일비서가 누구보다 아끼는 자식(김정남)을 낳은 사람을 어떻게 동거녀라 할 수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첫 부인으로 홍일천이라는 인물이 있고 또 김영숙과는 결혼을 했다는 설이 있다고 하자 “전혀 사실무근이다. 홍일천이라는 인물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김영숙과도 결혼식을 올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 안기부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는 “안기부내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변안전과 관련해 원거리 보호를 받고 있다”고 보호사실을 시인했다. 이 안기부의 관할권 내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언론계는 그의 언론과의 모든 접촉이 안기부의 통제나 조정을 받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의 한국 입국경위는 미국에 가고 싶어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했고 이것이 계기가 돼 오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기부가 그렇게 발표했고 월간조선 기사의 줄거리도 그렇다.

그러나 조선(북한) 최고 권력자 주변의 인물이 ‘철천지 원수’의 나라인 미국에 가고 싶어 ‘적국’인 남한대사관에 전화를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82년이라는 남북의 극한 대치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일부 언론에서는 ‘미스테리’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입국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입국경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잘랐다. 입국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역시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는 현재 방송쪽에는 출연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방송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지도자(김정일)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활자매체로 나가는 것과 비디오로 나가는 것과는 자극의 정도가 훨씬 다르다”는게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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