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100일 후면 6·2 지방선거가 열리는 것이다. 선거는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은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리해 줄 수 있는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국민들이 선택해 선출된 대표자들은 국민 뜻으로서의 권력 집행을 수행하고 책임을 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이 보장된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선거에 참여해 투표할 수 있고, 또한 대표자가 되기 위해 선거에 출마하는 것 역시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맘때면 일부 선거 출마자들의 정치 참여의 명분과 정당성에 관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야기되는 대표적인 두 전문가 집단이 있다. 교수와 언론인 집단이다. 교수의 경우 17대 총선에서 68명이 출마해서 31명이 당선된 바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와 같은 교수들의 정치 참여 비율이 확대됨에 따라 교수들의 정치 참여가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현실세계에 구현하는 소신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일신상의 안위를 위해 휴직 등으로 대학 수업의 부실을 초래하는 일탈행위인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 참여 교수들을 폴리페서(polifessor: 정치교수)라 부르며 염불(학문의 현실정치 적용)보다는 잿밥(학문을 통한 정치적 출세)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부정적인 사회적 시각이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와 유사한 논란의 대상이 되는 또 하나의 전문가 집단이 언론인이다. 지난 17대 총선의 경우 기자 출신 후보 61명이 출마해 31명이 당선된 바 있다. 교수들과 비슷한 비율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치러지는 6·2 지방선거에서도 한국기자협회 2월24일자 보도에 따르면 전현직 기자 중에서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출마 선언자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아직 전체적인 출마자들의 숫자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보도 자료에 의하면 역대 선거에 비해 적지 않는 숫자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의 선거 출마와 마찬가지로 언론인들의 정치 참여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교수들의 경우 휴직으로 인한 대학 수업 부실화 논란이 있지만, 언론인들의 경우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선거에 출마한다는 점에서 일견 언론인들이 공직자로의 전업을 희망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들의 정치 참여를 두고 일각에서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즉 정치 언론인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시각이 항존하고 있다. 왜일까. 한마디로 폴리널리스트로 불리는 정치 언론인들의 행태가 염불(올곧은 저널리즘의 구현) 보다는 잿밥(기자직을 통한 정치적 출세)에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언론인들의 저널리즘 구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회적 감시와 비판 기능에 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이다. 특히 언론이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성숙시키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당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감시견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집단과의 일정한 거리 두기는 필수적이다.

이렇게 볼 때, 언론인들이 정치참여에 뜻을 두고 저널리즘 행위를 한다면 이는 언론인들에게 정치인들은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 정치를 함께 할 동지적 관계 혹은 공생관계로 전락할 위험이 항존하게 된다. 한국의 정치 문화 속에서 언론인들이 특정정당의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눈에 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들과 긴밀한 친분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언론인들의 정치참여 과정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과 견제 기능을 실종시킬 수 있고 정치인들과 유착관계에 빠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 정재철 단국대 교수(미디어공공성포럼 운영위원장)  
 
교수집단이 평생을 통한 학문적 업적을 통해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의 귀중한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언론인들은 언론사에 입사했던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기사를 통한 올곧은 저널리즘 구현이 우리 사회의 귀중한 사회적 자산이라는 인식은 대단히 중요하다.

허옇게 센 흰머리를 하고 관록 있는 칼럼을 쓰는 노기자의 꼿꼿함이, 그리고 주름진 얼굴로 오랜 시간 동안 한 방송국에서 뉴스를 전달하는 노앵커의 모습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언론인들의 저널리즘 구현은 정치 못지 않게 중요하며, 정치는 언론인들이 아니더라도 참여할 수 있는 사회집단이 우리 사회에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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