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에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 정치가들이 잇달아 망언을 쏟아내 한국민의 감정을 격분시키더니 올해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이 망언을 하거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말을 하면 한국에서는 격렬한 반응이 일어난다. 일본은 겉으로는 조용하다. 그럴 때마다 주일특파원으로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곤 한다.

우선 영유권 주장 등 일본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가 커다란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선거 등 정치적 목적으로 또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꼭 말을 해야 하겠다고 내뱉는 말 한마디에 우리는 전력을 다해 대응하지 않으면 안돼 왔다. 일본안에서는 반한감정이 증폭되고 경제협력, 관광업 등 여러곳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침략의 역사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망언 등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독도 영유권 주장발언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에 대해서도 생각은 복잡하다. 한국의 반응은 전세계로 전파된다. 외국의 TV에 비치는 우리 모습을 되새겨보자. 일본 외상 이케다 유키히코의 인형을 만들어 불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발길질을 한다. 일장기를 태운다. 차량시위대가 붙이고 다니는 플래카드에는 ‘일본은 자폭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태극기가 외국에서 불에 타고 한국의 지도자들의 인형이 불태워져 발길질당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았는지. 일본은 자폭하라는 슬로건은 얼마나 황당하고 거친 표현인가.

한국땅인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책동에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러나 방법은 ‘아무래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지가 지난 16일 ‘섬을 둘러싼 광기’라는 사설에서 독도분쟁을 ‘허장성세와 분노로 가득찬 소인과 성숙한 거인과의 싸움’이라는 식으로 표현한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보도이지만 그렇게 대외적으로 비치고 있다는데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반성의 여지가 크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무슨 무슨 시민단체라는 곳들이 종군위안부 할머니라든가 징용자보상문제, 재일동포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고단하고 외로운 투쟁에 동참한 모습을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거의 본 적이 없다.

마치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독도에 관한 한 훨씬 이전부터 특히 1월부터는 문제제기가 예상돼 왔다.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설정이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용했다. 그러다가 지난 9일쯤 갑자기 정면대응한다면서 불길이 붙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 그런 신호에 따라 기사를 쓸 수 밖에 없었지만 자율판단이 마비된 언론과 시민사회의 모습은 우리사회가 아직 시민사회의 민주화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외국에서는 한국정부의 대응이 김영삼정권이 총선을 앞두고 강한 이미지를 주고 여론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본인들로부터 ‘한국과의 문제는 보름만 지나면…’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낯이 붉어지고 만다. 사람에 격이 있어 인격이라고 하고 나라에 격이 있어 국격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우리의 국격은 몇점 수준일까.

우리는 결사항전을 부르짖다 삼전도에서 머리를 찧어가며 항복하고, 오랑캐라고 문을 닫아 걸다 결국 나라를 잃어버린 비사를 갖고 있다. 현재 한일관계는 경제협력, 어업협정 등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권과 관련된 영역을 품고 있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가 다른 문제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슬기도 필요하다. 총선따위를 염두에 두고 불을 질러댄다면 국가의 장래와 국민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가. 끓어오르는 분노로 일본을 연구하고 기록을 남기고 자료를 찾고 인형을 불지르고 짓밟는 시간에 국제법 등을 공부해야 한다. 한낱 망언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으로 몸살을 앓지 않으려면 그리고 외국에 비치는 나라의 이미지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국민 정부 그리고 언론의 대응방식이 보다 정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노의 외침·돌던지기·불지르기·발길질·거친말로 애국심을 표현하고 대리만족시키는 시기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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