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한국에서도 개봉될 예정인 <대병소장>이라는 영화가 중국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중국 흥행 최대 대목이라는 설 연휴 이레 동안 8,000만 위안(한화 약 134억원)이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린 <대병소장> 덕분에 한동안 잊혀졌던 유승준/스티브 유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유승준/스티브 유가 명절 흥행 단골 배우 성룡과 함께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유승준/스티브 유라는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다시 불거지는 병역기피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재외 한인이 항상 한국인으로서의 민족적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기를 요구하며, 그들 각자가 현재 살고 있는 국가가 아니라 한국의 부름에 답하기를 바란다. 재외 한인의 정체성의 근거가 되는 실제적인 국적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한국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닌, 또는 지녀야만 하는 소명을 부여받는다. 재외 한인이 그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그/녀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경멸, 매도는 종종 실정법보다 가혹한 사회적 처벌을 부과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주해간 유승준/스티브 유는 1997년 댄스가수로 데뷔한 이래 2001년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정상급 연예인이었다. 그는 방송 등에서 병역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한국 국적 취득과 재귀화를 위해 병역의무를 마칠 것을 공공연하게 밝히곤 했다.

그러다가 2001년 초, 미국의 부모를 방문하러 출국한 유승준/스티브 유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서 병역을 면제 받았다. 그러자 비난 여론이 쇄도하면서 병무청은 유승준/스티브 유가 철저한 계획 아래 병역기피 수단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판단, 같은 해 2월 입장 해명을 위해 귀국하려던 유승준/스티브 유를 공항 출입국관리소에서 입국금지 시키고 법적 ‘조국’인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그는 줄곧 입국규제대상자로 남아있으면서 사생활과 공적 활동 모두에서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재외 한인에 대한 법적 문제와 인권 문제에 대해 내셔널/로컬의 지점과 내셔널/글로벌의 지점에서 여전히 새로운 이슈메이커가 되고 있다.

 

   
  <대병소장> 홍보 사진  
 

 

유승준/스티브 유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불거진 재외 한인의 병역문제는 재외동포정책기획단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거나 이탈할 경우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2005년 6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재외동포법 개정안)에 의해 정치쟁점화 되었다.

이 사건의 논란은 병역의 의무를 둘러싸고 벌어졌으나 사태의 본질은 글로벌한 환경에서의 국민, 또는 민족의 내셔널리티 정체성이 로컬로서의 한국사회와 빚는 균열에 있다. 유승준/스티브 유의 국적이 글로벌/내셔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인가 미국인가의 문제와 로컬/내셔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의 문제는 아직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유승준/스티브 유는 현재 국적 상 한국인으로서가 아니라 미국인으로서의 합법적 신분을 보증 받은 상태이며, ‘유승준’이라는 이름으로 (미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 나는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난 한국을 내 조국, 내 어머니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내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날 미국인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월드컵 경기를 볼 때도 늘 한국을 응원한다."고 말하는 그의 글로벌-내셔널리티는 주관적으로 한국이지만, 미국 여권을 소지하고 입국을 시도할 때는 객관적으로 미국인이다.

그런 유승준/스티브 유를 되돌려 보낸 병무청과 법무부의 초법적 대응은 한국사회에서 그가 여전히 한국인으로 호명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외국 시민권이나 국적을 취득하면서 이전 국가의 국적을 상실한 자에 대해 입국금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한 입법례는 국제적으로 볼 때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 하겠다.

 

   
   
 

 

민족문화는 단순히 충성이나 유대, 상징적 동일화의 구심점이라기보다는 문화적 권력구조다. 그러나 단일 민족이라는 전통적 정체성은 늘어나는 이민자들과 재외 한인들의 국내 재귀화 등 다양한 이산과 재이산의 역사를 겪으면서 본질적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중이다.

유승준/스티브 유의 경우, 자신이 공공연히 밝히던 소신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인데 대해 분명 신뢰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법적으로 잘못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군대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로 꼽힌다. 가령 남녀평등 문제가 불거지면 ‘여자도 군대 가던지’라는 말로 여성들의 입을 막으려하고, 유력하던 보수진영의 대통령 후보가 아들 병역기피 문제로 선거에서 냉대받기도 한다. 그만큼 청년 시절의 한때를 군대에서 보내는 것이 대다수 평범한 남성들조차 기껍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국적은 외국에 두고 한국에 와서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아니면 노동을 하든, 이런저런 경제 활동을 하는 몇몇 재외한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징병제를 고수하면서 남의 자식은 군대에 밀어 넣고 자기 자식은 빼돌리는 한국 사회의 멀쩡한 특권층이다. 보통의 한국 남성들이 ‘돈 없고 뒷배 없어서’ 가는 곳이 군대라고 억울해 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특권층의 병역기피는 심각한 지경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편법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특권층에 대해 문제를 삼거나 징병제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립 서비스’ 차원에서였든, 뭘 잘 몰라서였든 병역에 대해 지키지도 못할 말을 했던 입 가벼이 놀린 재외 한인 연예인 하나를 두고두고 민족의 반역자 취급하는 것도 못난 정서다.

 

   
   
 

 

국방의 의무는 꼭 병역으로 치러야 하는 것일까? 청년 실업 문제가 이토록 심각한 마당에 제대로 보수를 지급하는 모병제 문제도 생각해 볼만한 시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징병제만이 옳다고 주장하다보니 억지로 국방을 ‘의무’로 치러야했던 남성들은 여성이나 재외한인들에 대해 억울하고 또 억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그렇다고 언제까지 집단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한국 사회 안의 문제를 한국 사회 밖에 있는 재외 한인에게 책임지라고 할 것인가? 이제 그만 유승준/스티브 유에서 벗어나 공정한 과세 제도를 바탕으로 적절한 국방예산책정과 집행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프로페셔널한 직업군인이 되고자 하는 청년남녀가 자기실현을 하는 장으로 군대를 택할 수 있는 사회로 바꿀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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