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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림씨 망명사건보도는 북한문제에 있어서 우리 언론의 한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동안 북한관련보도는 빈약한 정보와 취재원의 제한 등의 이유로 추측과 폭로성기사로 채워지기 예사였다. 나아가 냉전적 사고를 부추기는 선동적 보도도 서슴지 않았다. 성씨 사건은 여기에 김정일의 전처라는 점과 탈출·망명이라는 극적 요소가 가미돼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언론은 이에 편승, 선정주의를 부채질했던 것이다.

이번 보도에 있어 문제점을 짚어보면 우선 이한영씨 인터뷰 기사의 무분별한 게재를 꼽을 수 있다. △윤정희 납치미수 김정일이 지시 △조총련 박전대통령 암살기도 △평양내 납북자타운 존재 △김정남도 함께 망명기도(이상 조선일보) △성씨 92년 망명타진 △최은희씨 산책상대 ‘호숫가 여인’은 성혜림씨 △성씨 탈출 러교민 허진씨 도움 △김현희씨 가족 북 수용소 있다 (이상 동아일보) △성씨 두달내 한국 올 것(중앙일보) △정남이도 데려오려 했다 △성씨 탈출 제3국과 모종합의(이상 한국일보) △80년 김정일 제거 모의(경향신문) 등 이씨의 발언을 각 신문마다 연일 경쟁적으로 실었다. 같은 날 2∼3개 신문에 단독 인터뷰 형식으로 각기 다른 내용이 게재됐다. 14년전 귀순한 이한영씨 한마디 한마디가 각 신문의 1면과 사회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조선·동아·중앙이 성씨 모자 전화통화 녹음테이프를 입수하기 위해 이씨와 금품까지 오고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니 각 언론사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동아·조선이 각각 4회씩 독점 게재한 이한영씨 수기 역시 문제가 많다. 김정일의 습관, 별장생활, 파티, 기쁨조, 여성편력이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마치 누가 더 선정적인가 경쟁이라도 하듯 김정일의 사생활과 부도덕함을 부각시키는데 열심이었다.

결국 이씨는 노련한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기 잇속을 챙겼고 언론은 그를 이용, 신문을 팔았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말았다.

첫 보도뒤 나흘째부터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남북관계가 이번 일로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자는 주장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미 북한을 한껏 자극시킨뒤였다. 안기부의 공작을 짐작하게 하는 보도와 함께 ‘종말의 시작’ ‘위기의 북한’ ‘체제 곳곳서 붕괴’등 극단적인 제목을 내세워 북한정권을 자극했다.

또 성씨 일행의 소재도 파악안된다면서도 ‘… 곧 서울에’ ‘한국정부 망명의사 확인’이라는 보도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추측·폭로성기사의 경쟁적 보도는 곳곳에서 혼선을 불렀다. 조선·경향은 성씨 일행이 프랑스에 있다고 주장했고 동아·중앙은 네덜란드 정부서 보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미확인 보도가 각사간 공방으로까지 이어진 예도 있다. 동아일보가 ‘최은희 산책상대 호숫가 여인은 성혜림’이라고 보도하자 다음날 중앙일보가 최은희씨 인터뷰를 통해 “만난 사실 없음”이라 밝혔다. 또 동아일보 ‘러교포 허진씨 성씨 망명 도움’ 기사는 5일후 허진씨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사실상 관계 없음”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성혜랑씨가 준비중인 소설도 여러 신문에서 다뤘는데 이 역시 과잉보도라는 지적이 있다. 출간되지도 않은 책에 대해 너무 요란스럽게 보도했다는 것이다. ‘북한실록’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으니 심했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다.

주요 6개 신문이 나흘간 다룬 성씨 관련기사가 무려 3백여건이었다. 독자의 알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준 것이 아니라 호기심만을 자극한 결과였다. 다시금 상업주의에 매몰된 언론의 선정보도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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