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 장상균)는 방통심의위에 환경운동가 최병성(47) 목사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올린 글을 삭제토록 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의미가 크다. 방통심의위는 그동안 시정요구(게시글 삭제요청) 조치는 권고사항으로 행정처분이 아니며, 포털 쪽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게시글 삭제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발뺌해왔다.

그러나 사법부는 방통심의위의 시정요구 조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판결을 내렸다.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방통심의위의 잦은 인터넷 게시글 삭제 조치에 제동을 건 것이다.

최 목사도 23일 “재판부의 판결은 방통심의위의 무분별한 인터넷 게시글 삭제 조치를 행정처분으로 본 첫 판결”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최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국내산 시멘트가 각종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들어져 유해하다는 글을 여러 차례 올렸다가 시멘트업계에서 방통심의위에 민원을 제기해 결국 삭제조치를 당했다. 최 목사는 방통심의위에 이의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진행해 왔다.

“절차가 처음부터 잘못돼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맹점이다.”

최 목사는 방통심의위의 문제는 심의절차에 있다고 지적했다. 방통심의위에 민원이 제기돼 심의안건이 올라와도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통보도 없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심의 전에 당사자에게 쓴 글에 대해 해명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방통심의위 절차에는 그런 절차가 없다”며 “심의결정을 내려 삭제가 되면 포털에서 한 줄로 된 삭제통보를 받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이의를 신청하면 재심의가 이뤄지는 데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 이미 위원들이 심의를 해 삭제조치를 내렸는데 이를 다시 번복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 목사도 이의 신청을 했는데, 4건 중 1건만 받아들여졌다. 그것도 글이 삭제조치 된 지 몇 달이나 지난 뒤였다.

최 목사는 국내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한 것을 당사자인 시멘트업계가 고발하자 제대로 조사해보지도 않고 게시글 삭제조치를 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심의위원들이 제기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데 이를 심의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심의제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최 목사는 특히 “심의과정에서 시멘트업계 관계자가 방통심의위를 찾아와 위원들을 만난 정황이 드러났다”며 “내 글이 신고 당했는지도 모르는데 심의를 맡은 위원들이 신고당사자를 만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최 목사는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방통심의위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목사는 “최근 방통심의위는 4대강 예산 편을 심의하면서 4대강 예산 편성의 문제, 정부 홍보동영상의 거짓 등은 판단하지 않고 취재 비중만 따져 편파판정을 내렸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잘못된 기구에 세금을 쓰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방통심의위가 정말 필요한 기구인지 따져볼 시점”이라고 밝혔다.

   
  최병성 목사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최 목사는 지난 2005년부터 수집한 자료와 정보를 근거로 국내 시멘트 공장들이 산업폐기물을 사용해 다량의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미디어 다음 블로거 기자 대상, 2007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2008년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환경문화상 환경운동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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