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동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신당창당을 기도, 이 과정에서 880억원을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주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같은 날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을 중간수사 결과로 발표했고, 문제의 기사는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다른 신문도 2월 4일부터 일제히 관련기사를 실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이 재임 중 수백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통치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점과 퇴임 후 권력유지를 위해 신당창당을 꾀했다는 사실, 이 과정에서 정치인과 언론인을 비롯한 각계에 수백억원의 뇌물성 자금을 뿌렸다는 점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언론은 우선 수백억원의 불법자금 조성, 신당창당 기도 내막을 파헤치고, 아울러 뇌물 수수설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초기 반응은 검찰발표가 어딘지 석연치 않다는 것이었다. 검찰 수뇌부만 알고 있던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과정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시기상으로도 이 사건은 2월2일 신한국당의 후보공천 발표 후 3일 <동아>가 특종보도했고, 뒤따른 검찰의 수사발표 형식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되었다.

따라서 언론은 이번 사건에 어떤 의도나 정략이 개입되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밝혀내야 했다. 그러나 언론은 이번 사건에 결부된 당사자임에도 진상규명을 위한 보도는커녕 검찰발표의 미비점을 이용
해 자신이 빠져나가는데 이용하였다.

2월 4일 <한겨레> <동아> <조선>은 사설을 통해 전두환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인의 명단을 밝히라고 주장하였다. 전두환은 ‘비자금 명단’에 대한 진술을 거부(조선 2/6 1면)하고, 검찰에서 더이상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자 ‘검찰의 추가 설명 필요하다’(중앙 2/5 사설) ‘언론계의 집단명예의 문제’(조선 2/6 사설) ‘신중치 못한 검찰’(한국 2/6 사설) 등 ‘검찰의 정략적 의도’을 걸고 넘어졌다.

5 6공 당시 부역을 했던 언론인이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5월 광주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전두환 장군를 새 지도자로>(경향),<전두환 장군의 의지의 30년, 육사 입교에서 대장 전역까지>(한국), <인간 전두환,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조선), <사천에서 청와대까지, 전두환 대통령-어제와 오늘>(중앙) 등은 당시 신문의 기획기사 제목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검찰에게 훈계를 하고 있다. <조선>은 6일자 사설 <언론계 ‘집단명예’의 문제>에서 “…이는 언론의 공정성과 도덕성, 신뢰성에 결정적으로 먹칠을 할 것”이라며 “…이것은 언론계 전체의 명예에 관한 것이며 사활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전체 언론인이 5·6공에 부역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반성은 커녕 교묘히 빠져 나가기에 급급한 언론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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