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아랍식 의상은 민족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분명한 색깔을 지닌 스타일이지만 체크무늬의 아랍 남성용 전통 스카프는 최근 몇 년 사이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패션의 하나가 된 듯하다. 이미 예전에 홍대 거리 등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이 스카프를 두른 젊은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고,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도 곧잘 목과 어깨에 둘러 방송과 매체에 등장하고 했으니 패션으로 자리매김을 한 셈이다.

더욱이 지금은 ‘빅뱅스카프’, ‘빅뱅스타일’로 불리고 있어 다소 놀랍기까지 하다. 아이돌 스타를 넘어 패션 리더, 패셔니스타로 회자되고 있는 빅뱅의 멤버들이 자주 하고 나온 스카프 스타일이 바로 이 아랍식 스카프였던 것이다. 아예 ‘빅뱅스카프’라는 새 이름으로 못 박혀 불릴 만큼 유행이고 동대문 시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다양하게 변형된 이 스카프가 같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고 한다.

<무한도전>에서 '온에어-매니저가 돼봐라' 편에서는 정형돈이 유재석의 매니저가 되어 ‘빅뱅 따라잡기’를 시도했는데, 빅뱅스타일로 코디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스카프였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분명한 패션이 되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전에도 려원, 이효리, 이적 등 유명 연예인이 이 스카프로 코디한 적이 있고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이민호 역을 맡은 김혜성은 이 스카프를 한 채 출연하는 등 이미 패션 코드의 일부가 되어 왔지만, 단순히 색다른 스카프를 했다는 이유로 패션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아랍 민족의 전통 의상의 하나인데 오래된 전통이 새로운 패션이라니?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사실 이 스카프는 옛날부터 아랍인 농민이 사용하던 것으로, 무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몸의 수분을 유지하고 모래를 막기 위한 생활용품이었다고 한다. 여성의 히잡 의상과는 달리 이것은 대중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성용 전통 의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쿠피예, 카피예, 키파야, 쉬마그 등으로 불리는 중동의 아랍 남성의 스카프는 패션이 된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한국과 관련된 최근의 국제적 사건들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등 끊임없이 나오는 분쟁 현장의 뉴스에는 늘 이 스카프를 한 아랍 남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원,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분쟁들에 나간 취재인과 활동가의 모습에서도 이 쿠피예를 한 옷차림이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을 반복해 본다면 눈에 익숙해졌을 수는 있겠지만 의식적으로 패션으로까지 취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장면에는 전쟁, 분쟁, 죽음, 피해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전쟁 이미지에 열광했다면 밀리터리 룩 같은 패션이 더 유행했어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대신에 이와 연관된 국제사회의 모습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추측된다. 아랍, 중동, 이슬람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강대국들의 사회에서 핵심 이슈 중 하나이고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이 되어 왔다. 특히 미국은 중동의 아랍권을 국제적ㆍ외교적ㆍ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한 주요 전략은 전쟁이지만 이에 반대하는 흐름도 매우 크게 형성되어 있다. 많은 정치인, 월드스타들, 국제활동가들이 아랍 사회를 방문하면서 ‘너희에게 다가가겠다’는 우호와 공존의 뜻으로 종종 이 스카프를 둘렀다. 그래서 이들의 행보는 주류의 방식, 즉 전쟁의 방식에 반하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비춰지기도 했으며, 보통은 잘 하지 않는 특이한 것이었기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본다면 이 아랍식 스카프는 좋은 이미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이국적이지만 국제적인 이미지도 덧씌워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처음 이 스카프를 두르고 다닌 사람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반전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었다. 전쟁에 반대하고 중동이 처한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차원에서 두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다소 정치적인 의도에서 이 스카프를 착용했다.

그리고 중동 지역을 다녀온 사람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소수만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년 흐르는 와중 이 스카프는 반전과 평화의 이미지와 함께 당시에는 생소했지만 왠지 선진적으로 보였던 국제연대라는 글로벌 이미지를 흡수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을 노래한 록밴드에 열광하거나 히피 문화가 유행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반전주의가 유행하면 문화의 모든 영역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오늘날 중동 아랍에 대한 전쟁을 많은 세계인들은 매우 불만스럽게 여긴다는 점이 기저에 작동했을 것이다.

   
   
 
계속되는 전쟁을 보게 되면 기존의 고리타분한 힘 자랑, 폭력적인 남성의 정치, 구리고 보수적인 권력 게임 같은 것을 비웃는 행위로서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청년문화’ 같은 사례처럼 기성세대가 이끌어 가는 방식에 반대한다는 표현으로 어떤 상징적인 다른 문화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그때와 달라진 점은, 오늘날 현대 사회가 엄청난 소비 사회라는 점이다. 아랍식 스카프가 한국 사회에 유행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유명 연예인들이 패션 스타일로 취했기 때문이다. 이 스카프가 빅뱅스카프가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일로 인기를 누린다. 수십만 명인지 수백만 명인지 그 수를 알 길 없는 엄청난 수의 팬들이 그들의 연예인이 선보인 패션을 확대재생산한다.

즉 그들의 패션 스타일은 하나의 소비문화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주목받고 유행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미지와 상품으로 특징짓는 소비문화는 아랍식 스카프 착용에 담겨져 있던 반전과 평화, 그리고 공존과 연대의 의미를 지우고 단순히 글로벌한 느낌을 주는 독특한 이미지만 남긴다.

별 달린 베레모를 쓴 체게바라의 얼굴 사진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 지구적으로 소비됐을 때도 처음에는 기성의 구질구질한 것들을 뒤엎어 버린 혁명가의 초상을 간직하기 위함이 컸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고 그의 용기를 따르고 싶었던 사람들끼리 나누었던 체게바라 이미지는 같은 지향, 같은 꿈을 간직한 동질의 인간임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혁명까지 상품으로 만드는 현대 자본주의의 위력 앞에 단순히 도전 정신 정도의 이미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려한 외모에 턱수염과 같은 거친 인상이 더해졌기 때문에 이미지로 소비되기 더 쉬웠을 것이고 이런 이미지를 현대 소비사회가 놓칠 리도 없었을 것이다.

   
   
 
쿠피예를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랍 사람들과의 교감이나 연대의 의도에서 했든 패션의 하나로 했든 스카프 스타일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받아들이든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기성의 주류가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면 언제나 이런 스카프를 하고 있으며 그들은 저항의 표시를 여기에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이 스카프에는 가혹한 현실이 담겨져 있다.

스카프를 패션으로 취하고 다른 문제들에는 눈을 닫는 것은 어쩌면 ‘글로벌’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와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한, 전쟁도 고통도 계속될 수밖에 없고 게다가 한국은 중동을 향한 전쟁에 깊숙이 개입해 있기도 하다. 패션으로 생각하고 두른 스카프를 통해 아랍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우연히라도 보게 된다면 나와 세상의 연결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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