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는 미디액트에서 출발했다. 적어도 활동하던 사람들이 맡았다면 이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 선정된 사업자는 어떤 단체인지조차 알 수 없다.” 고영재 <워낭소리> 제작자는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에 우려를 표하는 기자회견’ 중 끝내 눈물을 흘렸다. 미디액트 교육을 받고 감독으로 성장했다고 고백한 윤성호 <은하해방전선> 감독은 “미디액트는 일반 시민이 창작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곳”이라며 “문화부와 영진위는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액트를 논공행상 전리품으로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정부의 ‘진보 색깔 걸러내기’가 독립영화계에도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이하 영진위)는 미디어센터 지원사업을 위탁운영제에서 공모제로 전환하면서 설립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민영상문화기구를 새로운 사업주체로 사업 선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 8년여간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해 온 미디액트는 1월30일을 끝으로 모든 사업과 서비스를 중단했다.

   
  ▲ 지난 1일 서울 세종로 영상미디어센터 대회의실에서 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과정이 공정했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는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 회장(오른쪽)에게 미디액트 수강생들이 항의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인디스페이스 간판 내리고, 미디액트는 쫓겨나고=비단 미디액트뿐 아니다. 독립영화 배급의 전초기지였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도 지난 12월31일 문을 닫았다. 영진위가 공모제로 새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하자 공모제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고 스스로 간판을 내린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제13회 인권영화제’와 인디포럼의 ‘인디포럼 2009’, ‘제13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전북독립영화협회의 ‘2009 전북독립영화제’는 잇따라 지원금 대상에서 배제됐다. 지난해 초 공모제 전환 시도로 고초를 겪었던 서울아트시네마는 오는 2월말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이들을 영화계에서 배제하겠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립영화 발전을 위한 10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 해가는 상황이다.

▷‘시민영상문화기구’ 설립 한 달 만에 영상미디어센터 맡아=
영진위는 지난달 25일 시민영상문화기구를 새 미디어센터 운영 단체로 선정했다. 영진위는 이 단체가 △사무국 구성원의 다양한 전공분야 △미디어체험교육과정의 합리성 △HD와 3D 기술교육계획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아 새 사업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출범한 시민영상문화기구는 전 숭실대 문예창작가 교수며 축구평론가로 활동하는 장원재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문화계 대표 보수단체인 문화미래포럼의 사무국장인 김종국 홍익대 교수가 새 미디어센터의 소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다협, 스크린쿼터 축소 주장한 독립감독이 이사장=
시민영상문화기구와 함께 새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이하 한다협)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한다협은 스크린쿼터 축소를 옹호하는 최공재 독립영화 감독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영진위가 주최한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 당시 파행운영으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최씨는 영진위 사업자 공모가 나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뜻을 같이해 독립영화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해 사전 협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디액트 “심사 결과 이해 안 돼”=미디액트는 이번 심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진위가 내놓은 심사평으로는 왜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했는지 알 길이 없다. 시민영상문화기구는 심사위원들로부터 375점을 얻었는데 미디액트 운영진이 주축이 돼 구성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보다 불과 2점이 많았다. 영진위는 지난해 한독협 감사결과가 이번 심사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면서도 지난 8년간 미디액트 운영진이 일궈낸 성과는 이번 심사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1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를 신생단체로 보고 평가했다고 밝혔지만, 한 심사위원은 “(현 운영진이) 7~8년간 계속 운영해 왔는데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부분을 알고 심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시민영상문화기구에 이사로 참여하는 이들이 그간 미디어센터나 미디어교육과 연관된 활동을 한 전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한다. 독립영화 진영에서 20여 년간 활동해 왔다는 이조차 “김종국 교수 외에 다른 이사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독립영화 감독들은 한다협 최 감독이 어떤 독립영화를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디액트는 “미디어센터 운영 및 관련분야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새 운영진이 당장 2월부터 미디어센터를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공모제, 사실상 현 운영진 교체 위한 것=미디액트 운영진은 기존 미디어센터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없는 상황에서 공모제를 시행하려는 것은 현 운영진을 쫓아내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라고 비판했다. 인디스페이스가 공모제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디액트 운영진은 “이번 공모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문제 지적이나 평가도 없이 무조건 교체가 전제된 것”이라며 “재공모 심사 당시에는 심사위원들의 질의 자체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공모제가 현 운영진을 교체하는데 악용된 것은 비단 이번뿐 아니다. 스카이라이프의 시청자참여 프로그램을 위탁 운영해 온 시민방송 RTV도 방통위가 시청자참여 프로그램 채택방식을 비공모제에서 공모제로 전환하면서 위탁사업 계약이 해지된 바 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영진위는 “현 운영진과 언론의 문제제기는 이해한다”면서도 “심사위원들의 심사 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미디액트 현 운영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는 공모 심사 당시 각 조직이 제출한 공모 신청서, 심사위원의 평가 내용 및 질의응답 내용을 공개하고 이를 기초로 공개 평가와 토론을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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