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 때, 한국 영화계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2008년 12월 19일, 겨울방학에 연말연시까지 겹친 최고 흥행시즌 특수로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들이 판을 치는 극장가에서 전국에 걸쳐 겨우 열세 개 예술영화 전용상영관에서 개봉된 독립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유명한 감독의 연출작도 아니고, TV 연예오락프로그램에서 영화 홍보를 할 만한 스타가 출연한 것도 아니고, 눈 돌아가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신기술로 기교를 부린 것도 아닌 다큐멘터리가 해를 넘겨가며 장기상영에 들어가더니 전국각지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처음에는 10위 안에도 들지 못하던 박스오피스 순위를 점점 앞자리로 올리더니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그 영화는 봉화 산골짜기에서 함께 늙어가는 소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워낭소리>였다.

2009년 최고 흥행작은 <해운대>였지만 제작비 대비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린 작품은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였다.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2억 원 남짓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워낭소리>의 최종관객수는 295만, 매출액은 200억 원에 약간 못 미치니 어림잡아 100배 가까운 수익률을 낸 것이다. <해운대>가 120억 원의 제작비로 810억 좀 넘는 매출액을 올렸으니 <워낭소리>는 대박 가운데 초대박이라 할만 했다.
 
그러자 한미 FTA를 밀어붙이며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고,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다양하고 작은 영화에 대한 지원을 그치면서 영화의 다양성을 정책적으로 억압하던 이명박 대통령이며 유인촌 문화부 장관까지 나섰다. 영화가 개봉된 지 두 달이나 지난 날, 많은 국민들이 알아보고 서로 권해가며 입소문 낸 <워낭소리>에 기대어 인기 한 번 얻어 보겠다고 감독 동반 관람이라는 ‘대국민깜짝쇼’를 연출한 것이다.
 

   
  ▲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그러나 정권 실세들의 이런 관심과 행차는 미덥지도, 기껍지도 않았다. 스스로 잘하고 있는 판에 요란하게 끼어든 것이 깜짝 놀랍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문화적 소양이 없는 이들이 나대는 모양새가 깜찍스럽지도 않은데다가,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 못을 박는 끔찍한 뒷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모처럼 독립영화도 돈벌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명색이 배우 출신이자 연예인 노조 초대 위원장이었던 문화부 장관이라는 이가 하는 말이 독립영화에 대한 인큐베이팅 시스템이 필요하되 확실하게 될성부른 영화 몇 편에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개악 정책을 주장하더니 독립영화 개봉 지원 예산 5억 원을 폐지시켜버렸다. 독립영화가 TV를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통로였던 EBS 독립영화극장도 없애버렸다.
 
그러더니 저예산, 독립영화들에 대해 ‘선택과 집중’으로 성과의 극대화를 시도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당시 영진위 위원장 강한섭은 취임한 지 겨우 1년하고 두 달 만에 자리에서 쫓겨났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08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영진위가 기관장평가 부문에서는 ‘미흡’ 판정을, 기관평가 부문에서는 최하위 등급을 받자 해임 건의안이 제출되어 자진 사퇴 형식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리고 조희문 현 영진위 위원장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 출처=미디액트 홈페이지  
 
정책 당국은, 영진위의 상급 기관인 문화부는, 그리고 기관장도 기관도 모두 꼴찌라는 창피를 당한 영진위는 반성하고 거듭나려 노력하는 대신 일 못해서 쫓겨난 전임 위원장의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집행하고 있다. 영진위가 지원하던 사업들에 대해 기존의 지정위탁 방식에서 공모제로 바꾸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심사기준도, 평가결과도, 심사위원 구성도 투명하지 않은 허울뿐인 공모제를 통해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주체를 인디스페이스에서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로, 영상미디어센터 지원사업 주체를 미디액트에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로 바꿔 치웠다. 새로 선정된 단체들은 공모날짜에 맞춰 급조되어 실적도, 사업실행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듣보잡’들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선택과 집중’의 결과다.
 
극장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야하는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흥행 숫자며 수익도 중요하다. 그러나 <워낭소리>의 성과가 경이로웠던 까닭은 단지 수치상의 이익 때문만이 아니라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위해 새로운 길을 냈기 때문이었다. 그 길을 <낮술>과 <똥파리>가 이어갔고, 그래서 한국 영화는 다양하고 풍성할 수 있었다.
 
영상미디어센터에서 8년, 독립영화전용관에서 3년 동안 영화와 미디어의 시민 참여 활동을 위해 애써왔던 <워낭소리> 제작자이자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 사무총장인 고영재 PD는 ‘<워낭소리>는 미디액트의 조그만 창고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도 실적과 수익을 신봉하는 현 정권입장에서는 벤치마킹을 해도 부족할 판에, 영진위는 한독협을 몰아내려고 기를 쓰고 있다.
 
이런 문화정책을 손 놓고 보게 된다면 앞으로 한국 영화계는 상품으로 나온 소는 많아도 함께 일할 소는 찾을 수 없었던 <워낭소리> 속 우시장처럼 영화는 많아도 제대로 된 독립영화 한 편을 찾기 어려운 판이 될 것이다. <워낭소리>의 소가 죽기 바로 전까지 노부부의 겨울을 덥힐 장작을 부려놓았듯, 어려운 여건에서도 수많은 독립영화들이 우리 사회의 문화와 정신을 자극하고 이끌어왔던 데 대한 보상치고는 너무 참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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