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언론사의 데스크는 한국언론을 책임지는 주역들이다. 좁게보면 한 언론사를, 넓게 보면 한국의 언론상황을 책임져야할 주인공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언론계 안팎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한국언론의 권력자들인 데스크들이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왔고 악화된 한국의 언론상황을 상당부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항변에 그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한경쟁의 여파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자신들이며 한국언론이 처해 있는 ‘과도기적 격변기’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데스크들의 현주소와 고민을 조망해본다.



국민일보 백화종 편집국장의 출근시간은 새벽 6시30분. 퇴근 시간은 기약이 없다. 유난히 잠이 많은 그로선 고통이다. 기자생활 23년만에 편집국 야전사령관자리에 오른 그는 일이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갖고 있지 못하다. 회사가 그의 생활 전부를 지배한다.

편집국장실에서 만난 그는 “무엇보다 글이 쓰고 싶다”고 했다. 대학졸업과 함께 시작한 기자 직업에 그는 후회는 없다. 다만 “현장을 떠나 관리자로 행세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언론계 생활중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비단 백 국장뿐 만아니다. 대부분의 중앙일간지 편집국장은 24시간 내내 신문을 위해 산다. 항상 비상대기중이며 심리적 긴장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런 생활은 부장, 차장 등 소위 ‘데스크’들도 마찬가지다.그럼에도 많은 기자들은 ‘데스크’를 꿈꾼다.

‘의무’강조하는 관리자로

한국의 기자들에게 ‘데스크’라는 꼬리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라이프 스타일’의 대변화를 겪는다. 일터가 현장에서 편집, 보도국으로 무게 중심이 변하고 ‘권리’를 주장하기보단 ‘의무’를 강조하는 관리저로 변신하는 것이다. 후배기자들에게 해결사로서,경영진들에게는 회사의 진로를 설계하는 동반자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대다수의 데스크들은 이러한 ‘중간자’적 위치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요근래 각 언론사 데스크들에게는 또 하나의 무거운 숙제가 부여돼 있다. 사주 못지 않게 ‘경영’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영기여도는 바로 자신의 거취와도 연결된다.

능력 인사를 내세우며 ‘세대교체’가 공공연히 나도는 상황에서 이들의 고민은 깊다. ‘성취감’을 갖기가 어렵다는 호소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자신’은 없고 ‘회사’만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체질개선의 흐름속에서 팀제 도입등 기능 중심의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며 과거와 달리 데스크의 위치와 역할 역시 재조정되는 과도기가 이러한 허탈감의 일차적인 주요인이다.

연봉 5천만원 웃돌아

동아·조선·중앙일보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신문사들은 지난 2~3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동아의 경우는 27명에 달하는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났으며 조선은 대기자제를 도입해 10여명의 간부들이 대기자로 발령을 받고 일선 데스크 자리에서 한발짝 물러났다. 중앙 역시 대대적인 리엔지니어링 작업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연공서열식 인사를 파괴했다.

한마디로 언론사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 데스크자리에 대한 조직적, 인적 개혁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사내에서 차지하는 데스크의 비중을 확인시켜주는 구체적인 증거인 셈이다.

이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조선, 동아, 중앙 등 대부분의 중앙일간지 부장급 이상의 간부 연봉은 5천만원을 넘는다. 한 중앙지 간부는 “퇴직금, 기타 관리비용을 감안하면 웬만한 프로야구 스타수준은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을 비롯한 일부 신문사들은 매년 1천만원대의 성과금을 연말에 지급할 정도로 이들의 경제적 여건은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개선됐다. 요근래에는 회사 차원의 해외견학 기회도 많아졌다.

‘위기’호소하는 권력자

조선과 중앙은 지난 94년부터 편집국 부장급 간부들 전원이 일본, 미국 등에서 해외 유수 신문들의 제작 시스템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사회적 성취감도 뒤지지 않는다. 가령 중앙지 사회부장들의 경우 25~27명의 기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출입처만도 내무부, 경찰청 등 권력 기관들이 다반사다.

다른 부서장들도 비슷하다. 이들 기관에 대한 보도논지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무서운 권력자들인 셈이다. 언론이 누리는 사회적 혜택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언론사 간부자리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감투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데스크들은 ‘위기’를 호소한다. 외부에 비치는 ‘권력’에 비해 안으로 눈을 돌리면 ‘안팎의 곱사등 신세’라는 것이다. 자신의 권리에 더욱 철저한 후배기자들, 명예퇴직제 등 능력인사를 내세우며 시시때때로 ‘세대교체’를 거론하는 경영진들의 요구 사이에서 속만 태우는 게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이다.

체력은 기본

특히 자본과 권력의 교묘한 언론통제가 다반사로 이루어지면서 언론계 안팎의 감시와 ‘외풍’을 막아내기를 기대하는 후배기자들의 시선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데스크에게는 과거의 기획력, 판단력, 통솔력 등 기본적인 품성이외에 ‘뚝심’과 ‘체력’이 중요 요건으로 등장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제작량에 따라 근무시간이 거의 무한대에 달하는데다 후배기자들을 추스리고 갈등을 풀어줄수 있는 인간적 교감을 확보하기 위해선 격한 술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뚝심과 체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데스크들은 신세대 기자들의 장악력도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데스크 위기론과 관련 동아일보 김충식 정보과학부장은 ‘반성’을 강조한다. 한국의 언론간부들이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일을 안하는 관습에 젖어 있고 축소지향적으로 문제를 보는 풍토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치열성을 발휘하기보단 수동적인 관리자로만 머물렀다는 진단이다. 그러한 관행이 변신을 요구하는 쪽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편집국 ‘조직’ 연구 필요

경향신문 사회부 김지영차장은 데스크의 기능과 편집국내 위상에 대해 그 누구보다 고민하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3년전 차장으로 승진해 지금은 사건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차장은 “신문 지면연구 못지 않게 편집국 조직을 연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편집국 조직체제에서 데스크는 ‘일에 몰두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자관리, 지면제작, 기획, 후배들과의 인간 관계 유지 등 잡다한 업무가 ‘신문 만드는 일’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가정을 포기하고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속에서 살아가지만 별다른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데스크제도의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가 갖고 있는 대안중의 하나는 ‘행정데스크제도’의 도입이다. 미국과 일본 같이 부서관리를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행정 담당 데스크를 별도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데스크들은 1단기사라도 더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체험담이다. 김 차장은 구체적인 제도개선안을 마련해 회사에 내놓을 생각까지 하고 있다.

“팀제 도입 도움안돼”

지난 94년 조선일보가 처음 도입한 이후 각 언론사가 앞다퉈 시행한 팀제 도입도 부분적이나마 이러한 문제인식을 포함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데스크들에게 쏠리는 불필요한 부담을 줄이고 의사결정을 하향화한다는 본래의 의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지는 않다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국일보 조성호 과학부장은 “기사취급량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데스크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며 “업무 절감을 겨냥했던 팀제 도입이 데스크들의 부담 감소로 이어진 것 같지는 않다”고 평가했다.

고 최석채 전 편집인협회 회장(전 대구매일 회장)은 지난 87년 고희의 나이에 언론계를 은퇴하면서 ‘신문인이 은퇴하면 남는 것은 스크랩과 자존심 뿐이다’는 말을 남겼다. 아마도 데스크들은 이 명구가 유난히 가슴 절절하게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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