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언론 1백년을 맞은 한국언론사에서 일반 매체를 통한 본격적인 언론비평활동은 1920년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수년간 언론학계의 발굴 노력등으로 그 실체가 밝혀진 언론전문지의 ‘역사’를 살펴본다.

우리나라에 언론전문지가 최초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28년 7월 <신문연구>라는 잡지가 탄생하면서부터다. 이 잡지는 같은해 5월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연구단체 ‘조선신문연구회’가 발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잡지는 실물이 남아 있지 않고 동아일보(7월6일자)에 광고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신문연구> 창간호엔 ‘신문의 교육적 가치’(유시영) 등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일제시대

2년 뒤인 1930년 7월엔 <철필(鐵筆)>이 창간됐다. 이 잡지는 창간사에서 “조선의 신문인, 다시 말하면 조선의 저널리스트 제군을 위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그 성격과 방향을 밝히고 있다.

1931년 2월까지 통권4호를 발행한 이 잡지에 실린 주요기사는 ‘대기자와 명기자론’(민태원) ‘쏘휘엣트 로서아의 붉은 신문’(이세용) 등이다. 이 잡지는 일제 때 나온 언론전문지 가운데 가장 긴 발행실적을 보였다.

1933년 12월엔 <호외(號外)>가 창간됐다. 이 잡지는 3년전 발행된 <철필>과 달리 주로 일반 독자를 의식하고 편집한 대중지 지향의 잡지였다. 창간호만 내고 종간된 이 잡지의 주요내용은 ‘동아·조선·중앙 삼대신문 편집총평’(청진루 주인) ‘김성수냐? 방응모냐? 전라도냐? 평안도냐?

동아·조선의 일기전(一騎戰)’(황금산인) 등으로 가명의 필진이 많고 일반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었다.

1935년 9월에 나온 <쩌-날리즘> 역시 1호로 생명이 끝난 잡지였다.

이 잡지는 당시 보전(지금의 고려대)이 입학 정원이상으로 학생을 뽑아 문제가 된 이른바 ‘보전문제’를 둘러싸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지상을 통해 일대접전을 벌였던 싸움의 원인과 경과 및 시비를 심판자(審判子)라는 가명으로 다룬 ‘동아 대 조선전의 진상 급기 비판’ 등의 기사를 게재하는등 당시 언론계의 민감한 쟁점을 과감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같은 언론전문지의 탄생은 민간지의 지도적, 비판적 역할이 퇴색했던 상황과 맞물려 있다. 당시 상황을 상지대 박용규교수는 논문에서 “1933년 이후 민간지들이 모두 대자본의 주식회사체제로서 기업화가 정착하고 경쟁이 극렬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전문지 외에도 <삼천리> <비판> <개벽> 등의 잡지가 언론비평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해방후 주요흐름

해방후인 1946년 5월17일엔 잡지형태가 아닌 신문형태의 언론전문지 <비판신문>이 등장했다. 주간형태인 이 신문은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언론출판에 대한 비판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언론가의 동향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기사는 객관보도보다 논평위주였고 ‘한국신문운영실태의 개관’이라는 시리즈로 당시 발행되고 있던 각 일간종합지들을 논평했다. 이 신문은 한때 가판이 1만부나 팔리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비판신문>은 당시 이승만 정부에 의해 두차례나 무기정간처분과 신문압수라는 박해를 받았지만 꾸준히 성장, 1960년 7월15일자부터 일간으로 전환, 제호를 <일간 평론지>로 개칭했다.

이때부터 최상덕 논설위원의 ‘사회부장’이란 소설을 연재하고 ‘신문비평’란을 신설, 일간지의 보도·편집·논평태도를 평가하였다. 이 신문은 1961년 4월13일자부터 다시 주간으로 환원, 1년간 발행하다 중단됐고 1966년 3월28일 재창간됐다.

1947년 4월엔 잡지형태의 언론 비평지인 <신문평론>이 창간됐다. <신문평론>은 당시 우후죽순처럼 언론사가 늘어나면서 설립된 언론인 양성기관 ‘조선신문학원’의 개강과 때를 같이해 창간된 것이다. 이 잡지는 주로 언론의 연구와 언론계의 정화 등을 편집방향으로 잡았다.

이 잡지의 편집진은 언론학을 이론적으로 공부했고 실무경험도 겸비한 사람들로 구성, 상당한 수준을 갖췄으나 경제사정으로 4호까지만 발행됐다. 제2호에 실린 ‘신문기자가 되려면’이란 글에는 당시 언론계 최고간부들이 망라되기도 했다.

1952년 9월18일엔 주간신문 형태인 <신문의 신문>이 창간됐다. 1960년 4·19이후 까지 발행된 이 신문은 언론계 소식의 전달과 함께 언론 관련 쟁점및 보도내용등에 대한 비평과 함께 언론을 매개로 한 정치기사등도 게재했다.

자료로 남아있는 1960년 12월 13일자는 1면 머리기사로 ‘장면 내각 물러날 때가 왔다’며 동아일보 피습사건을 계기로 장면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기사를 실었으며 역시 1면 3단기사로 ‘여야정쟁 재연예상’이라는 정치기사를 보도했다. <신문의 신문>은 자매지로 월간 <진상>을 펴내기도 했다.

1960년 6월15일엔 ‘언론의 언론지’를 자임하고 주간신문 <신문세계>가 창간됐다. 이 신문은 ‘신문논조’와 ‘지방신문평’, ‘평론지의 평론’ 란을 각각 둬 일간지만이 아니라 다른 언론전문지에 대한 비평도 다뤘다.

같은해 7월1일엔 <신문논평>이 창간, 중앙일간지들의 보도를 비평했다. 이 신문은 정부당국이 당시 진보지였던 민족일보의 인쇄처였던 서울신문에 민족일보에 대한 인쇄계약 해지를 지시하자 맹렬히 비판했다.

민족일보가 결국 1961년 5월19일 폐간조치를 당하자 당시 편집인협회가 이 사실을 방관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서울신문에 대해선 한국신문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비평했다.

언론전문지를 표방하고 90년 9월 창간된 <매스컴신문>은 한겨레신문 내분 사태등 언론사내의 민감한 현안을 과감하게 다루기도 했으나 92년 2월 월간 연합등의 강제 판매기사등으로 연합통신 현소환사장이 발행인과 기자등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 기자등이 구속되는 사태를 계기로 폐간됐다.

지난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오늘> <바른언론>이 창간돼 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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