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한미 FTA를 염두에 두고 미국 쇠고기를 굴욕에 가까운 조건으로 수입한 바 있듯이 대만도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수입을 염두에 두고 한국과 유사한 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을 결정하였다. 국제 통상 조건으로도 납득되지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수입조건에 대하여 대만 국민들도 당연히 거부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대만의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미국과의 협상을 파기하고 과학적 근거에 의거하여 보다 엄격한 수입조건을 확정하였다. 소탐대실의 상황에서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국민, 국회, 언론, 정부 등이 하나 된 대만의 모습은 과거 국민의 의사표시가 불법으로 매도되고, 정부와 주요 언론의 선동과 선전으로 과학적 사실마저 왜곡되었던 우리 사회를 반성하게 한다.

되돌아보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초고속으로 쇠고기 수입을 타결해 버린 상황에서 국민의 정당한 반대를 접했을 때 대만과 달리 용기가 없는 정부로서 선택할 길은 단 하나였다. 급조한 광우병 전문가와 언론을 통해 과거 주장을 180도 바꾸고 최소 통상 조건인 OIE 권고 기준을 방역에 충분한 과학기준으로 둔갑시키면서 자신들의 결정을 합리화하고 밀어붙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왜곡된 주장의 타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는 주변국이 한국과 같은 조건으로 수입하지 않으면 WTO에 제소당할 것이고 장차 한국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수입하는 나라가 있다면 언제고 미국과 재협상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 내용은 2008년 8월 19일 여야 합의서로 남아있다.

당시 정부 주장과는 달리 여전히 주변국은 우리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현재 WTO에 제소 당한 나라는 주변국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이다. 더욱이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입지가 약한 대만만이 한국과 유사한 조건으로 수입하려다가 국민의 저항으로 정권퇴진은 물론 국민투표에까지 가는 상황 속에서 지방 선거에서 대만 여권은 참패했다.

비록 집권 초기의 자존심과 권위를 위해 억지로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했지만 한국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대만의 수입조건 파기는 과거의 졸속협상을 시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야 합의서에 따라서 한미 쇠고기수입위생조건을 재협상하고, 가축전염병예방법을 보다 엄격히 개정하면 된다. 더욱이 이런 미국과의 재협상은 미국과의 형평성을 요구하면서 한국을 WTO에 제소한 캐나다에 대한 좋은 방어 전략이 된다.

그런데 최근 대만 상황에 대하여 침묵하는 정부를 보면 현 정부가 과연 대만 정부처럼 국민의 뜻에 따라 과학적이고 국제적으로도 납득되는 수입협상을 다시 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우려가 된다. 더욱이 정부 기관지로 전락하여 자신들의 예전 논조마저 바꾸면서 국민을 기만했던 한국의 주요언론은 여전히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대만 상황이나 여야합의서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것 하나로 불법이나 심지어 좌빨이라고 매도하고, 공영방송 프로그램도 재판에 회부할 정도로 야단이었던 정부와 주요언론은 왜 이렇게 침묵하는 것일까.

현재 정부는 지하벙커에 숨어 또 다른 구실 만들기에 몰두하고 장차 주요 언론은 그 내용을 앵무새처럼 보도하면서 대만상황을 왜곡하고 폄하할지 모른다.

   
  ▲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만 상황은 정부로서 지난 날의 실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며, 이 기회를 살릴 때 캐나다와의 WTO 분쟁에서 우리의 입지는 강화된다. 기회가 왔을 때 잘못된 첫 단추를 시정하지 않으면 캐나다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을 여러 나라와의 협상에서 계속 불리하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 국제통상 기준과 과학적 내용에 따라 과거 졸속 협상 내용을 얼마만큼 바로잡을 것인가에 대한 정부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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