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 누군가 당신에게 개당 백원씩 줄 테니 종이학을 접어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량은 1만개. 다 접으면 1백만원이다. 그런데 숙련자가 아닌 이상 1개를 접는데 3~4분 정도 걸리므로 시급으로 계산하면 1천5백~1천8백원 정도다. 2009년 기준으로 시간당 최저임금은 4천원이다. 당신의 선택은?
두 번째 질문. 당신은 이름만 들어도 서운한 느낌이 확 드는 삼류 대학에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붙인 과외 전단지를 보고 한 학부모가 과외를 의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학부모는 당신의 학교를 서열은 천지차이지만 이름은 한 끗 차이인 다른 명문대와 착각해서 그런 거였다. 그럴 때 당신의 선택은? 오해였음을 밝히고 돌아서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밀린 월세와 카드 명세서를 생각하며 열심히 가르치리라고 굳은 결심을 할 것인가.

   
  ▲ ⓒMBC  
 
위의 질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핵폭탄이 터지려 한다는 설정과 비교했을 때 과연 어떤 게 더 첨예할까. 문화방송 일일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이하 ‘지킥’)에서 등장인물들이 처한 현실은 이런 식이다. 다른 드라마 주인공들이 세계 평화나 출생의 비밀, 재벌 3세와의 연애를 고민할 때 ‘지킥’의 캐릭터들은 다소 ‘쪼잔’하지만 밥이냐 자존심이냐의 문제를 놓고 마치 당장 눈앞에서 핵폭탄이라도 터지는 양 치열하게 고민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지만 사소하다고 치부하는, 그렇기 때문에 잊고 싶은 상황들을 다시 보여주는 것.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이 텔레비전 안에서 재현되는 걸 경험한다.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극중 캐릭터인 정음은 ‘한다’라고 선택했다. 그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의 면면은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다. 고된 노동에 지친 정음은 종이학 제작 알바를 지인들에게 ‘하청’을 주고, 그 하청은 하청에 하청을 거듭, 개성 공단 노동자에게까지 들어간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종이학 접기 노동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이 노동강도는 높으나 부가가치는 그리 크지 않은 작업에 투여되는 노동력들, 즉 개당 1백원이라는 조작된 노동가치 책정에 포섭된 사람들은 동네 구멍가게 주인아줌마, 외국인 학생(혹은 노동자), 청년실업자들, 거기에 개성 공단 노동자들까지 사회 바깥에서 저임금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 종이학 접기 원청자는? 극중 개성 공단 노동자의 대사를 빌리자면 “배때기가 부른” 식품회사 CEO 순재다.

‘지킥’의 화면 안에는 계급 상승에 성공한 소시민과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기 직전인 젊은 세대가 공존한다. 그리고 그런 메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부수적 인물들 또한 마치 한국 사회의 권력관계도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얽혀있다. 그렇게 구성된 극중 캐릭터들은 코미디라는 틀 안에서 돈과 계급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처절한 문제를 겪는다. 시청자들은 그 사소하지만 치열한 모습에서 웃음을, 그럼에도 권력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슬픔을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울고 웃으며 위로를 받는다.

 

   
  ▲ ⓒMBC  
 
어찌 보면 언론을 장악하고 괴벨스식 선전정치를 꿈꾸는 현정권이 ‘빵꾸똥꾸’ 해프닝까지 벌일 정도로 ‘지킥’이라는 코미디를 불편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최저임금 일자리조차 얻지 못하고 학벌에 좌절하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고, 자신의 처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캐릭터의 아이러니가 코미디의 속성이라고 한다면, ‘지킥’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코미디 장르의 특징을 통해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으니.

 ‘지킥’을 ‘닥본사’하는 사람들과 해프닝을 벌인 사람들이 ‘지킥’에 대해 열광 혹은 불편해 하는 건 사실 같은 지점이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바로 그 지점. 이런 드러냄 때문에 ‘지킥’은 어떤 의미에서는 외설적일 수 있다. 대중은 “그게 사실 아니야?”라면서 낄낄거리며 환호하고, 어떤 이들은 악영향을 끼친다며 불편해 한다. 하지만 새삼스럽진 않다. 촛불이 그랬듯, 그 어떤 이들이 대중이 환호하는 걸 불편해 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니.

황정현(영화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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