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이같은 경제논리가 TV프로그램 편성논리에도 먹혀들어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요일 저녁의 황금시간대에 맞물려 편성돼있는 방송3사의 간판프로그램인 이주일 투나잇 쇼(SBS)와 추적60분(KBS2), 시사매거진2580(MBC)의 ‘악화·양화론’이 그것.

투나잇 쇼를 ‘악화’로, ‘추적60분’ ‘시사매거진2580’을 ‘양화’로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투나잇쇼’ 방영 이후 KBS2, MBC가 자랑하는 두 시사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관계자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지난 4월 21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이주일 투나잇 쇼’(일요일 밤 9:50~10:50)는 방송 첫날, 시청률 36%(점유율 50%이상)를 차지하면서 일약 시청률 1위로 떠올랐다.

이에따라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대에 맞물려 편성돼있는 KBS의 ‘추적60분’(일요일 밤 10:10~11:05)과 MBC의 ‘시사매거진 2580’(일요일 밤 9:40~10:30)은 기존 20% 안팎의 시청률에서 각각 10.6%, 11.6%로 추락했다. SBS의 ‘돌아온 이주일’은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2, 3회째 방송에서도 첫날의 시청률에는 못미치지만 두각을 나타냈다.

이주일의 위세에 눌린 탓인지, 드물게 좋은 평가를 받고있는 시사고발·탐사프로그램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들의 우려와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KBS의 한 PD는 “추적60분이나 2580은 사회 고발 프로그램으로서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고발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며 “이같은 시청률 위주의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이 계속될 경우 그나마 협소한 탐사프로그램의 입지는 계속적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KBS의 ‘추적60분’이나 MBC의 ‘시사매거진 2580’은 그동안 ‘4·11불법 선거운동 현장’ ‘대학교수 임용비리’ ‘실태보고―탈북귀순자 지금’(이상 추적60분), ‘영농 지원금 증발’ ‘토지공사와 땅장사’(이상 시사매거진 2580)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고발하는 내용을 주로 다뤄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방영 3주째를 넘긴 ‘이주일 투나잇 쇼’는 ‘성공한 사람’ 1명과 연예인들을 차례로 초청해 ‘주연’인 이주일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 춤판을 벌이는 ‘코미디·토크 쇼’. ‘코미디계의 황제’ ‘국회의원을 지낸 코미디언’이라는 이주일의 무게때문인지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이후에도 안정된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주일의 어눌하면서도 헷갈리는 말투와 철저한 ‘코미디언 정신’ 탓에 위트와 풍자·해학이 넘치는 ‘본격적인 토크쇼’라기 보다는 ‘토크쇼 형식을 빈 코미디’라는 평가와 함께 해묵은 ‘저질시비’가 함께 재현되고 있기도 하다.

‘높은 시청률’이 최선은 아니지만 ‘낮은 시청률’이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시사고발·탐사프로그램만이 양질이며 코미디는 모두 저질이라는 평가도 옳지 않다. 많은 시청자들은 진지한 시사프로그램과 함께 가벼운 코미디물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SBS는, 일요일 저녁 끝없이 이어지는 쇼, 드라마, 오락프로그램 끝에 모처럼 일부분을 차지하는 MBC, KBS 2의 두 탐사프로그램에 또 하나의 코미디프로그램을 맞물려 편성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채널선택 입지를 좁혔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두 탐사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시청자들의 계속적인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욱 투철한 탐사정신을 바탕으로 사회를 고발하는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함으로써 적어도 TV에서는 ‘양화가 악화를 구축할 수도 있음’을 다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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