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본부 데이터뱅크국 조사정보팀. 이 생소한 단어들의 조합이 중앙일보 곽용석기자(36)가 현재 일하고 있는 부서의 이름이다. 그는 낯선 이름의 직함을 가진 만큼 하는 일도 낯설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단어들은 데이타베이스 구축, 데이타베이스 연동, 오라클 시스템, 정보 서칭, 데이타 속성파악, 데이타 메뉴 결정, 사용자 분석 등 일반인에겐 암호와 같아 종잡을 수 없다. ‘뉴미디어 시대가 오면 나는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절로 한숨이 나오게 한다.


“DB 만들기는 작은 세상 만들기”

그러나 곽기자의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지극히 간단하고 명료한 목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일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가치있게 가공해서 찾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의 일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이미 정리, 축적된 정보 가운데 이용자의 주문에 따라 정보를 찾아주는 일과 이미 있는 정보를 어떤 목적에 적합하도록 가공해 데이타 베이스(DB)로 만드는 일이다.

그는 88년 중앙일보 조사부로 입사할 당시 사진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사내에서 찍은 사진과 통신으로 들어온 사진, 타사에서 찍은 사진을 항목별로 스크랩해놓고 편집국에서 필요로 할 때 찾아주는 업무였다. 그 뒤엔 뉴스속보부에 근무하며 신문, 통신, TV,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속보를 빠른 시간 안에 찾아내 컴퓨터 통신망에 띄우는 일을 맡았다.

곽기자는 4년반 동안 이 일들을 해왔다. 그러나 그는 이 일들을 하면서 사실 별다른 보람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로 들어왔지만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자긍심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일하던 선배들 가운데 몇몇은 회의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떠나기도 했다.

그가 조사기자로서 전망과 희망을 갖게 된 것은 바로 DB를 만나고부터다. DB, 길가에 돌처럼 널려있는 정보들을 잘 고르고 가공해 가치있는 정보로 재탄생시키는 일에 그는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하나의 DB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작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먼저 어떤 DB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고민이 훌륭한 결론을 맺기 위해선 자신만의 힘으론 부족하다. 때문에 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그 전문가들은 학자일 수도 있고 동료기자 가운데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들을 통해 어떤 DB가 지금 필요한지, 그 DB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인지 파악하게 된다. 이 과정을 사용자 분석이라고 한다.

어떤 DB를 만들 것인가 결정되면 대략적인 설계를 한다. 일종의 도상연습처럼 실전에 나가기 전 DB의 윤곽을 그려보는 것이다.

관련분야 서적 탐독은 당연한 일

그 다음은 이 DB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실재하는지, 실재한다면 어디에 있고 누구의 소유로 돼 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데이타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전단계에서 세웠던 대략적인 DB 설계에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정보는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정보도 있고 실재하지만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DB를 구성할 메뉴가 최종 결정된다.

이제 선택된 데이타를 입력시키는 일이 큰 일거리다. 자체 인력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주를 주기도 한다. 이 때 입력양식, 즉 항목과 분야를 제대로 구분하고 배치해야 자료가 매끄럽게 부어진다. 입력작업과 동시에 이 데이타가 들어갈 알맞은 집, 즉 데이타베이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작업을 병행한다. 이 과정은 전문 프로그래머에게 맡긴다.

데이타와 데이타가 들어갈 집,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데이타를 프로그램에 입력시키고 시험 가동한다. 여기서 문제점이 발생하면 수정작업을 거친다.

하나의 데이타베이스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된 DB는 끝없는 갱신이 요구된다. 새롭고 시의적절한 정보를 계속 보완해 가지 않으면 그저 낡은 정보를 전시하는 ‘정보 박물관’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곽기자는 이 DB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획과 감독, 관리를 맡고 있다. 기자라는 칭호보다 ‘PD’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법한 일들이다. 그가 이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만들어낸 DB들은 자동차, 의료, 경제통계, 사회복지, 선거DB 등이다.

이것들은 현재 ‘전문주제 DB’라는 타이틀을 달고 편집국의 취재를 지원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곽기자는 이 DB들을 계속 보완하고 갱신해 앞으로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상업용 DB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한 전문가는 “DB는 개간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마치 잡석과 흙으로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 듯 DB라는 작업은 하잘 것 없어 보였던 정보를 모아 새로운 정보의 영토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보의 영토는 개간지 위에 집과 공장을 짓거나 농토로 일구어 낼 수 있듯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된다.
곽기자는 앞으로의 언론환경에서 DB가 차지하는 역할을 이렇게 구상하고 있다.

다매체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속보 경쟁은 점점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대신 드러난 한 사건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이 언론의 품질을 좌우하게 된다. 심층성과 종합성은 바로 DB의 품질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에선 취재기자와 DB전문기자, 여론조사 전문가가 한 팀을 이뤄 기획특종을 만들어내고 있다. 취재기자가 취재한 개별사안들에 대해 DB전문 기자는 통계와 다양한 사례들을 결부시키고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문제에 대한 여론을 체크한다. 이렇게 되면 작은 한 사안을 통해 사회의 모든 부분을 그려내게 된다.


시의적절한 정보 생산위해 고심

실제로 중앙일보 조사부는 작년 10월 교육팀 기자와 함께 DB를 이용한 기획기사 ‘대학순위가 바뀌고 있다’를 처음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중앙일보 ‘JOINS’의 인물DB 정보를 몇 개월에 걸쳐 가공 편집해 사회저명인사의 출신 대학을 양적으로 집계, 대학순위를 평가한 내용이다. 비록 고도의 분석적 기법을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DB를 사용한 기획기사란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곽기자는 쉬는 날이면 북한산을 오른다. 컴퓨터 앞에 찌든 심신을 맑은 산바람에 씻어내기 위해서다. 가끔은 오래된 책들을 수집하기 위해 청계천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정보통신관련 서적을 읽는 데 바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세계 정보통신 환경에 더듬이를 뻗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DB로 세상을 뒤흔들 특종을 꿈꾸며 오늘도 컴퓨터 앞에 바짝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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