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투항…정부 원칙의 승리."
철도노조가 8일 만에 파업을 철회하자 대다수 신문지면을 뒤덮은 평가들이다.

이들 신문들은 8일 동안 철도노조원들이 파업을 벌이는 동안 이들이 왜 파업을 벌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지면은 열차지연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사례들로 채워졌고, 철도공사 직원들이 평균임금보다 1.5배나 더 받고 있다고 꼬투리를 잡았다.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철도노조는 업무복귀를 선언했다.

여러 신문이 지적한대로 철도노조원의 파업은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고용안정과 근로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는 사측의 일방적 단체협상안 파기와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파업까지 사태를 악화시킨 정부의 강경 일변도의 왜곡된 노동관도 균형 있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신문사의 단체협상을 모두 파기하고 사측에 유리하게 새로 판을 짜자고 한다면 기자들은 가만히 있었을까?

사회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는 생명체다. 옆 사람의 불행을 외면하면 언젠가는 나의 불행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벌써 철도파업 철회로 자신감을 얻은 정부가 노동문제에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미 공무원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한국노동연구원 직장폐쇄 등 공공기관 전반으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끝나면 그 다음은 사기업 전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4일자 전국단위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철도노조 8일 만에 파업 철회>
국민일보 <철도노조 파업 전격 철회>
동아일보 <철도노조 8일만에 파업 철회…오늘 업무 복귀 / 원칙대응-여론악화에 손들어>
서울신문 <철도노조 파업 전격 철회>
세계일보 <철도노조 전격 파업 철회>
조선일보 <"한명숙 전 총리에 수만불">
중앙일보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한겨레 <철도노조, 파업 철회>
한국일보 <노사당정 노조현안 의견 접근>

조선일보 "철도파업 8일 만에 백기 투항…떼법 안 통한다"

1면에 <철도파업 8일 만에 '백기투항'> 이라고 알린 조선일보는 3면에서는 <투쟁적 노동운동, '법과 원칙' 앞에 더 이상 안 통했다>고 선언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노조가 법과 원칙에 손을 들었고, 파업을 무기로 사측을 압박해 양보를 끌어내던 민주노총 방식의 '투쟁적 노동운동'이 전혀 먹히지 않은 사실상의 첫 번째 사례"라며 "철도노조가 법을 의식하는 파업을 하고 스스로 파업을 철회 한 것은 노동운동사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12월4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 대통령이 코레일 비상상황실을 직접 방문해 강경대응 기조를 이어간 것, 이후 검찰과 경찰이 철도노조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노조집행부에 대한 전담 체포조를 조직한 것, 그리고 싸늘했던 국민여론 등이 이번 철도노조 파업철회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면 <파업으로 증명된 방만 경영> 기사에서는 1만 여명이 없어도 여객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과잉인력이 많다는 사실을 역으로 보여준 것이라며 구조조정이 빨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사설에서는 철저한 손해배상 청구를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철도노조에 파업 손해도 철저히 배상시켜야>에서 "임기 2-3년인 공기업 경영진이 당장의 말썽을 어떻게든 모면하고 보자는 식으로 무르게 대응하는 바람에 노조의 '파업병'을 고질병으로 만들었다"며 "이번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확실히 관철시키지 않으면 내년, 후년에 또 철도 파업이 재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아예 철도공사의 민영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사설 <철도노조, '원칙지킨 힘'에 손들었다>에서 "정부가 쌍용자동차 파업에 이어 철도노조 파업에서도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 일각의 잘못된 노동운동 관행을 바로잡는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며 "철도노조의 행태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일본처럼 코레일을 민영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12월4일자 사설  
 

국민일보도 사설에서 "노사분규가 진행 중인 한전 산하 발전 5개사와 가스공사, 노동연구원은 물론, 개혁이 필요한 다른 공기업에도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나섰다. 서울신문도 "노조의 이번 파업 철회가 공기업 개혁의 전기가 되어야 할 이유"라며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 힘을 실었다.

특히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철도노조 파업으로 서울대 면접시간에 20분 늦은 한 고등학생의 사연을 전하면서 '철도파업으로 한 고교생이 대학진학의 꿈을 접게 생겼다'는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한국 OECD 중 노동환경 최악…노조활동 보장하는 사회가 선진국가"

반면, 철도노조 파업을 비난하기만 하는 언론들에게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진짜 선진화의 원칙은 구조조정이나 임금삭감이 아니라 노조라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국가가 지원해야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진짜 선진화의 원칙>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에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꼴찌에서 3번째이고, 평균노동시간도 가장 길다는 통계를 전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힘들게 일한 대가를 사회로부터 거의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 경향신문 12월4일자 칼럼  
 

장 교수는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이것은 공기업이라고 다를 바 없다. 경제가 어려우면 더욱 노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일각에서는 코레일 직원들의 높은 연봉을 거론하지만 나는 그들의 연봉이 높아서는 안 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이는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기태 철도노조 위원장은 입사 18년 차인 자신의 연봉이 4000만 원선이라는 데 철도노조원들의 연봉이 높다고 몰아세우는 사측과 정부와 보수언론 관계자 중 강남 3구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비교해보면 당장 답이 나오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새뮤얼 곰퍼스의 명언>도 새겨들을 만하다. 윤 교수는 "파업이 없는 나라를 알려주면 자유가 없는 나라를 보여 주겠다"는 새뮤얼 곰퍼스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헌법이 노동 3권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고 있는 것은 결코 노동자나 노동조합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노동 3권이 침해되고 파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나라는 곧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마저 위태로운 나라이며 그렇게 될 경우 그 피해자는 단지 노동자나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냉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한명숙 전 총리, 대한통운에서 돈 받은 혐의"

조선일보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기소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수만 달러를 건네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검찰이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 <"한명숙 전 총리에 수만 불"> 기사에서 "검찰은 곽 전 사장이 2007년 4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사장으로 선임된 점에 주목, 이 돈이 사장 선임을 도와주는 대가로 준 것인지 아니면 불법 정치자금인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12월4일자 1면  
 

조선일보는 검찰은 이에 따라 곽 전 사장의 계좌를 추적, 곽 전 사장이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시점에 실제로 돈이 인출됐는지 확인 중이며 한 총리 외에도 지난 정부 때 여권 실세이던 J, K씨에게 로비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이 보도에 앞서 한국일보는 지난 13일 참여정부 실세 J, K, H씨가 곽 전 사장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KBS 파업부결' 일컫는 고사성어는? "각자도생"

   
  ▲ 한국일보 12월4일자 칼럼  
 
지난 2일 KBS 노조의 김인규 신임사장 반대 '총파업 투표' 결과가 부결로 나온 것에 대해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원용진 서강대 교수가 KBS의 조직 정서구조에 대해 '각자도생'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원 교수는 한국일보에 쓴 칼럼에서 "조직 내 한쪽은 사장을 믿을 수 없고, 다른 쪽은 노조를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엉망진창이라고 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며 "이쯤 되면 조직 전반을 휘감는 조직 정서구조란 게 형성되게 마련"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각자도생. 제각기 살 길을 모색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새로이 사전에 그 뜻말을 보태야겠다. 2009년 한국의 공영방송 KBS가 택한 길이고, 또 그렇게 살아갈 길이라고. 이번 정권 들어 굳어진 정서구조이면서 앞으로의 지침이 될 각자도생으로 풀어 본 KBS의 앞날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사장을 반대했던 이들은 납작 엎드려 시간을 버는 쪽으로, 노조를 반대했던 쪽은 경영진의 지침을 조직논리로 받아 종업원처럼 살아가지 않을까. 그러면서 인지부조화가 생기지 않는 쪽으로 각자의 처지를 변명할 말들을 만들어갈 것이고."

원 교수는 학술대회 참가로 방한한 일본 NHK 전문가 마츠다 히로시씨는 KBS 소식을 접하고 자민당 정권 하에서 일본 민주주의의 역주행에 일조했던 NHK와 너무 흡사한 경로를 지니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면서 마츠다씨는 이제 책무를 그들(KBS)로부터 거두어 시민이 지는 수밖에 없지 않냐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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