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이 지난달 25일 제5기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독자적 정치조직 건설’을 공식선언, 재야의 정치세력화 논의가 새롭게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87년 6월항쟁 이후 재야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논의와 실천은 꾸준히 모색돼 왔다. 87년 ‘민중의 당’ ‘한겨레민주당’으로부터 출발, 92년 대선 때는 ‘민중당’의 실험이 있었으며 4.11 총선을 앞두고 ‘통일시대 국민회의’와 ‘정치개혁시민연합’의 결성을 통해 재야인사의 대규모 정치권 진입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일부 정파를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꾀했을 뿐 재야운동 전체의 대중적 토대와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이들은 명멸을 거듭하다 기존 제도권 정당에 흡수돼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다수 재야운동단체를 포괄하고 있는 전국연합의 ‘선언’은 앞선 시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일단 보여진다. 그동안 전국연합은 자주, 민주, 통일이란 이념을 기치로 해 대중운동에 기반한 전선(戰線)운동을 벌여왔다. 이제 이런 노선을 바꿔 합법정치 공간으로의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연합 황인성 집행위원장은 “계절도 변하고 몸도 커졌기 때문에 계절과 몸에 맞는 새 옷이 필요하다”는 말로 정치조직 건설의 당위성을 표현했다. 전국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우선 함운경씨(서울 관악갑)등 4명의 전국연합 후보를 출마시키고 박순보씨(부산 연제) 등 2명의 민주노총 후보를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전국연합의 ‘새 옷‘ 입기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독자적 정치조직의 결성을 선언한 대의원대회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임시의장 정명기 전남대총학생회장), 민주주의민족통일서울연합(상임의장 이수호) 등 일부 소속단체 대의원들이 ‘선언’의 채택을 반대하기도 했다.

한총련 산하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박병언의장(연세대 총학생회장)은 “우리 사회는 아직도 미국과 현정권이 자신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폭력적 방식을 동원해 탄압하는 수준”이라며 “합법정당이 결성된다고 하더라도 미국과 현정권의 폭력적 탄압을 견뎌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반대이유를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전국연합의 조직과 재정상태도 정치조직을 건설하기엔 미약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의 김영도사무처장은 “김영삼 정권이 과거와 다를 바 없고 아직도 민중의 기본적 생존권조차 해결되고 있지 않다”며 “전국연합의 정치세력화가 자칫 재야활동이 반외세, 반독재 운동을 벌이는 데 제한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노동운동단체협의회(의장 김영곤) 등은 전국연합의 정치세력화를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며 ‘노동자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전국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런 이견에 대해 “앞으로 실천 속에서 차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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