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치루 주인장말야, 그사람 참 해고되고나서도 마지막까지 장부 들이대고 외상값 달라고 하더만.”
“아 그 중국집에서 면 치던 친구 말이지. 원래 주인장하고 가게걸고 노름해 중국집을 차지했다지.”
17일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한 중국음심점에서는 21년전의 그때 기자시절을 회고하는 동아투위 위원들의 환담으로 웃음꽃이 폈다.

이날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창립기념일. 올해로 21주년을 맞았다. 매년 엄숙하게 치러오던 기념식 행사를 올해는 파격적으로 도봉산에서 가졌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산행을 겸해 갖기로 했던 것. 전날 봄비치고는 다소 억센 비가 내린데다가 이날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이었는지 참석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침까지 우울했던 날씨는 그러나 화창하게 개어 산행 기념식은 조촐하기는 했지만 내빈 소개에 만세 삼창에 이르기까지 갖출 것은 모두 갖추고 격식에 맞춰 진행됐다. 기념식을 마치고 하산, 한적한 중국집을 골라 가진 뒤풀이 자리였다.

광화문 회사 근처 세종여관과 한성여관을 전전하며 밤을 새워 야근하던 기자시절, 해고된 후 회사 근처 중국집등에서 모임을 갖고서도 밥값이 없어 눈치를 보던 애환들이 이제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 된 듯 하다. 위원들의 히끗 히끗한 백발이 그간의 세월을 말해준다.

동아투위는 이날 동아투위 발족 21주년 기념 성명에서 “더 늦기 전에 동아투위를 원상회복시켜야 할 것”이라고 동아일보에 촉구했다. 역사의 시계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역사가 바로서는 날, 동아의 역사만 이대로 거꾸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동투 위원들은 산행 내내, 그리고 뒤풀이 자리에서도 그 누구 하나 동아일보의 ‘일’을 개인적으로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어찌보면 쉽지 않았을 자리에 참석한 후배기자인 노조위원장에 대한 배려였을까. 한 위원이 “동아일보가 그래도 열심히 노력은 하던데”라며 “동아일보의 불명예는 동아투위의 불명예”라는 성명문안에 담긴 심경의 일단을 내보였다.

동아투위의 최대 현안중 하나는 후임 위원장 선출문제. 김태진위원장이 이젠 출판사일 등으로 자리를 내놓아야 할 때가 됐지만 후임자 물색이 쉽지 않은 터였다. 이제는 50을 넘는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투위의 막내 신세를 면하고 있지 못한 이명순위원(대림산업 이사)이 “김위원장 아래 기수가 이어받아야 나도 한번 위원장 해보지 않겠느냐”는 푸념에 “(작고한) 안종필 위원장은 43살에 위원장 했으니 위원장 할 나이는 됐다”고 화답, 다시 한번 웃음꽃이 폈다.

“우리 동아투위가 살아있는 한 그래도 아무나 맡아서는 안된다. 맡을 사람이 맡아야 한다.” 이제는 동아투위 좌장격인 윤활식 위원(전 한겨레신문 전무이사)이 거듭되는 논란에 매듭을 지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MBC 파업사태로 모아졌다. 가능한 한 연락들 많이해서 화요일(19일)날 MBC를 찾아가기로 하고 자리를 마감했다. 돈 걱정 부터 하게되는 위원장의 엄살(?)에 “걷으면 될 것 아니냐”는 다그침이 뒤따랐다.

언론을 바로세우겠다는 후배들에게서 21년전 꿈꾸었던 희망이, 믿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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