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말이 한 시대의 화두처럼 번지고 있다. 언론은 그 어떤 집단보다 열심히 이 화두의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은 웬일인지 80년 해직 언론인의 원상회복 등 스스로에 대한 ‘바로 세우기’에는 상당히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빼앗긴 신문과 방송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내는등 80년 신군부의 강압적인 언론통폐합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언론 통·폐합조치는 곧바로 이들 언론사에 재직하던 수많은 언론인들의 강제 해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80년 강제해직 언론인 9백여명 가운데 3백여명이 통·폐합에 따른 해직자들이었다.

이런 가운데 해직 언론인들은 지난 11일 공보처에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등 원상회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청구인 대표의 한사람인 월간 <말>지 노향기 사장(54·한국일보해직기자)은 “해직 언론인의 원상회복 문제는 단지 과거의 피해를 보상받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인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문제”라고 피력했다.

―공보처에 행정심판 청구를 했는데.

“원상회복을 위한 노력이라면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보자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청구서에서 적힌 대로 80년 문화공보부가 언론인 9백33명이 부당하게 해직 당하는데 주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5·18관련 검찰 공소장에서 밝혀졌다. 문공부의 업무를 승계한 행정청인 공보처가 해직자의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정부는 원상회복에 대해 해결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기자해직 및 언론통폐합이 전두환씨의 죄를 구성하는 주요 내용으로 적시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원상회복에 대해선 어떤 구체적 의지나 행동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이건 법과 역사의 정의에 대한 지극히 편의적인 발상이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은 89년 3당 합당 이전에 이 문제의 해결을 약속했었다.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뀌었다고 정책마저 바뀌어서야 되겠는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부가 상징적으로나마 원상회복을 위한 의지를 보인다면 해직언론인들은 상당수 공감하고 수긍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언론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부가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푸느냐 그렇지 않느냐엔 언론의 역할이 상당히 크다. 특히 현직 기자의 노력이 중요하다. 현직 기자들이 이를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문제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기자들이 불의한 권력과 싸우다 처참한 결과만 남겼다고 생각해 보자. 앞으로 누가 불의한 권력과 싸우겠는가. 싸우더라도 용기가 생기겠는가.
기자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80년 해직 언론인의 원상회복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기자들이 용기를 갖고 앞으로도 불의와 싸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언론사주들은 자신들의 잃은 것에 대해서만 주장하지 말라. 최소한 원상회복에 대한 조그만 노력이라도 선행돼야 하지 않겠는가.”

―전두환 장학생 등 언론계 과거청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10·26이 일어나고 난 뒤 언론계에선 유신 당시의 협조 언론인에 대한 청산 문제가 제기됐었다. 그때 일부 기자들이 ‘누워서 침뱉기’라느니 ‘어차피 오십보 백보’라느니 하는 얘기가 있었다. 물론 유신시대 기자 생활을 했던 그 누구도 그런 지적에 대해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덮어두기만 한다면 역사의 정의는 무엇이 되는가. 최소한 명백한 협조를 했던 사람들만은 상징적으로 청산이 돼야 했다. 일벌백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5, 6공 협조 언론인에 대해서도 이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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