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통·폐합은 보안사의 치밀한 사전 계획하에 진행됐으며, 그 과정에서 보안사는 언론사주들에게 사유재산권 및 경영권의 포기를 강압적으로 종용했다.

보안사는 ‘언론사 포기각서 징구계획’을 만들어 통·폐합 집행을 위한 단계별·시간대별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언론사는 보안사가, 지방언론사는 지역 보안부대가 각각 담당, 언론사주들을 개인 면담 등 각종 명분으로 소집하고 이들에게 통·폐합에 이의 없다는 내용의 포기각서를 강요했다.

통·폐합에 저항하는 언론사주들에게는 회유와 협박 등이 동원된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포기각서가 작성됐다. 또한 언론사주들은 보안사가 미리 마련한 각서 문안을 그대로 구술로 받아적었기 때문에 그 내용과 형식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았고 다만 언론사명과 사주명, 지장 등만이 달랐을 뿐이었다.

이처럼 초법적인 강박에 의해 단행된 언론사 통·폐합은 그 규모 차원뿐만 아니라 그 성격과 내용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한국 언론구조의 대대적인 변혁을 가져다 주었다. 통·폐합의 결과 전국 64개 언론사(신문 28, 방송 39, 통신 7) 가운데 44개사(신문 11, 방송 27, 통신 6)가 기존 경쟁 언론사에 흡수·통합되거나 아예 사라져 버렸다.

언론사 통·폐합에서 나타난 특징은 △ 중앙지의 정비와 지방지의 1도 1사제 △단일 통신사 설립 △방송의 공영화와 신문·방송의 겸영 금지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같은 언론구조는 그해 12월에 제정된 언론기본법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제 5공화국에 걸쳐 변함없이 유지됐다.

각 매체의 통·폐합 현황과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신문의 경우 중앙지는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흡수·통합돼 종래의 7개지가 6개지로 줄었고 석간이었던 서울신문이 조간으로 전환되면서 조간지와 석간지가 3대 3의 비율로 조정됐다.

그리고 경제지는 4개 신문 가운데 서울경제와 내외경제가 폐간되고 매일경제와 현대경제(통·폐합 직후 한국경제로 바뀜)만이 각각 석간과 조간으로 남게 됐다. 지방지는 서울을 제외한 각 도와 기타 직할시에 1개 신문만을 허용하는 1도 1사제가 실시돼 15개의 지방지들이 10개로 줄었으며 모두 석간 발행으로 제한됐다.

통·폐합으로 전국 신문의 수가 대폭 축소되는 바람에 살아남은 신문들의 시장 지배력은 크게 늘어나게 됐다. 뿐만 아니라 조·석간 비율이 균형적으로 조정된 중앙지나 경제지는 각각 신문시장을 양분하면서 일종의 과점 체제를, 그리고 지방지의 경우 지역신문시장에 대한 독점 체제를 누리게 됐던 것이다. 또한 5공 기간에 새로운 신문의 시장 진입이나 조·석간 발행의 변동이 전혀 없었고 신문 카르텔이 존속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신문기업들은 안정된 시장구조 속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통·폐합의 결과로 신문구조가 이처럼 경영상의 안정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던 반면에 정치 권력이 경영주를 통해 언론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구도로 바뀐 점은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라 하겠다.

통신사는 기존의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을 해체, 이들을 합쳐 연합통신을 새로 발족시키고 3개 특수 통신들을 여기에 흡수시켰다. 연합통신은 전국의 일간지와 방송들이 지분에 공동 참여하는 회원제 통신사였으나 실제는 5공 정권의 통제하에 들어간 KBS와 MBC가 전체 지분의 74.5%를 차지, 사실상 정부 장악하의 국영통신이나 다름없게 됐다.

그리고 단일 연합통신의 출현과 동시에 지방뉴스의 취재는 연합통신과 양대 방송에게만 허용됐다. 그 결과 일간 신문의 지방주재기자 제도가 폐지되고 지방부도 사라져 지방뉴스의 흐름은 획일화됐으며 3백여명의 지방주재기자들이 해고되는 제 2차 대량해직 사태도 벌어졌다. 또한 외신의 국내 공급도 연합통신을 거쳐 각 언론사에게 제공됐기 때문에 5공 정권은 연합통신을 통해 국내외 정보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방송사의 경우 종전의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의 2원 체제를 공영방송체제로 단일화하면서 KBS와 MBC의 양대 방송사만 남겼다. TBC(동양방송)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동아방송·서해방송 및 전일방송·대구의 한국FM 등의 라디오를 KBS로 흡수·통합시켰다.

그리고 독립법인체로서 MBC와 제휴관계를 맺고 있던 21개 지방 MBC 방송사들의 주식 51%씩을 강제로 MBC에게로 이양시켜 이들을 사실상 MBC 지방방송망으로 재편했으며, 또 MBC의 주식 65%를 KBS가 인수토록 했다. 또 기독교방송에 대해서는 보도방송을 일체 없애고 순수 복음방송만 하도록 제한했다.

방송공영화정책은 방송을 재벌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신문·방송의 겸영금지 원칙을 적용해 신문기업과도 떼어놓는 등 소유구조를 분리시키는 의미를 지녔다. 삼성그룹의 TBC가 KBS로 흡수된 것이나 경향신문과 MBC가 서로 분리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같은 소유구조의 분리는 공영화라는 명분을 내걸면서 사실상 방송을 정부 통제하에 완전 장악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통폐합의 결과 KBS가 MBC와 연합통신 주식 가운데 지배적 지분을 실질적으로 장악함으로써 5공 정권은 기존 정부기관지인 서울신문과 더불어 신문·방송·통신의 관영언론체제를 구축하게 된 셈이었다.

이상과 같이 1980년 언론사 통폐합은 한국언론구조를 대대적으로 재편함으로써 정치권력에 의한 중앙통제가 손쉽게 이뤄지는 극히 단순화된 언론통제구도를 형성시켰던 것이다.

이같은 언론통제구도가 문공부 홍보조정실의 보도지침이나 각종 언론유관기구들의 활동과 더불어 5공 정권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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