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김기웅순경(30)은 살인누명을 쓰고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항소까지 모두 기각되고 13개월 동안 복역하고 난 후에야 진범이 잡혀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습니다. 동생은 지금도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일반인도 아니고 경찰관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을 스스로 자백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바로 잡고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김순경의 누나 김기자씨(37)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 3월20일 오후 5시 서울변협 서초별관에서 열린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공동대표 김중배 등)의 ‘사법제자리놓기 시민모임’(회장 박경자·58) 발족식에 참석, 사법피해 사례발표를 했다. 김씨의 사례발표가 끝나자 또 한 사람의 피해자인 정광용씨의 발표가 이어졌다.

“장애아동 보육시설인 혜인원에서 근무하던 중 복지시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노조를 결성해 해결의 대안을 마련해 보고자 했습니다. 이러던 중 혜인원측에서 학부모로부터 받은 친권포기 각서, 기부금 유용과 관련된 서류를 쓰레시 소각장에서 입수했습니다. 혜인원측은 이 사실을 알자 내가 그 서류를 훔쳤다고 절도죄로 고소,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혜인원 전이사장의 양심선언으로 절도가 조작된 것이 밝혀졌음에도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하면서까지 공소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를 확정 받았지만 나와 같은 이유로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산재해 있는 이상 나의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들의 발표는 평범한 시민들이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인권을 침해당할 수 있으며 시민들을 보호하기엔 너무나 무력한 사법현실을 체험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이제 이런 사법현실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어 나서게 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법제자리놓기 시민모임’은 이렇게 “수사와 소송의 편의만을 생각하고 시민의 법적권익은 등한시 해 온 사법현실을 시민의 힘으로 변화시켜 보자”는 취지에서 결성된 것. 그래서 이 모임의 창립회원들은 김순경의 가족, 정씨를 비롯해 억울한 해직에 맞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국방부 군무원 정재명씨(52), 32억의 돈을 잃어버린 불광주택조합 사건을 해결하고자 7년째 싸우는 최병곤씨(52)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억울함만을 풀고 하소연하기 위해 이 모임을 만든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냉정한 사법현실에 상처받고 불우한 처지 때문에 구제받지 못한 시민들을 위로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기 위해 이 모임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모임의 첫사업으로 △구속영장 실질심사제도 △소송 인지대 인하 △무죄선고에 대한 손해배상 현실화 △피의자 구속기간 단축 등 ‘국민을 위한 소송법 만들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며 사법피해백서도 발간할 예정이다. 또 3월29일 ‘사법피해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나’라는 주제를 첫회로 매월 월례포럼도 개최한다.

‘사법피해자들의 사법피해자 없는 세상만들기’는 최근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사법개혁의 중요한 밑그림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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