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기업들간에 언론재단 설립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최근에 언론재단을 설립한 곳은 삼성과 엘지. 삼성은 지난해 10월 ‘삼성언론재단’을 설립하고 최근 신문광고를 통해 해외연수 희망자 모집에 나섰다. 12월 ‘LG상남언론재단’을 설립한 엘지도 지원자 원서를 접수중에 있다.

비단 이들 그룹들만이 아니다. 한보그룹도 조만간 언론재단을 설립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써 기존의 ‘성곡언론재단’을 운영중인 쌍용,대우의 ‘서울언론재단’, 현대가 출연한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언론재단을 갖게 됐다.

쌍용 성곡재단이 효시

언론재단의 효시는 지난 66년에 설립된 성곡언론재단이다.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이 만든 이 재단은 당시만해도 파격적인 발상이라는 평을 받았다. 언론인들의 해외연수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였던 풍토에서 언론계의 각별한 관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후 77년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이 동아일보기자로 재직중 폐경색으로 숨진 동생 정신영을 추모하며 기금 1억을 관훈클럽에 출연해 ‘신영연구기금’을 만든데 이어 78년 대우가 서울언론재단을 설립했다. 정회장의 기금 출연은 관훈클럽이 창립회원이던 정신영씨 묘지에 추모비를 세운데 대한 보답형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영기금과 서울재단 설립이후 대기업들의 언론재단 참여는 10여년간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재단이 하는 일도 비교적 단순했다. 매년 일정한 절차를 겨쳐 언론인들의 해외연수를 지원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재벌기업의 돈을 받아 연수를 떠난다는 점에서 일각의 따가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부감이 크지는 않았다. 연수 대상자들도 오랫만에 제작 현장을 떠나 머리를 식히는 정도로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설립된 언론재단은 규모나 사업 내용면에서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선 재단의 자본금 규모가 엄청나다. 삼성의 경우 자본금이 2백억원에 달한다. 이건희 회장의 개인 출연 1백억원에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1백억원을 더 했다. 엘지도 1백억원의 기금을 출연했다.자본금 31억원인 서울언론재단이나 1억원으로 출발해 지난해에 90억원을 돌파한 신영연구기금과 비교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업내용도 기존의 언론재단과 차이가 크다. 해외연수 기간이 대폭 늘어난 것은 물론 언론인 연구나 출판활동 지원, 심지어 각 언론사의 기획취재까지 지원(엘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미국의 로 스쿨을 본따 ‘삼성 펠로우십’을 운영한다는 구상도 내놓고 있다. 대상자들도 확대됐다. 비단 중앙언론사 기자들 뿐만아니라 지방지 기자들, 언론학자, 프로듀서 등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그동안 유력 매체의 일부 기자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졌던 언론재단의 수혜 폭이 대폭 확대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반응도 있다. 언론인들에 대한 언론사 자체적인 투자가 아직도 태 부족한 실정에서 이들 언론재단들이 ‘필요악’이라는 얘기다. 외국의 경우 신문사들이 주체적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 언론사의 재정규모와 재교육에 대한 투자정도,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영진의 의식이 외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동우회’결성 지속적 모임도

그러나 오히려 이같은 파격적인 지원이 일각의 의혹을 사는 빌미로 작용하기도 한다. 재벌기업의 로비 창구로 전락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그것이다. 기업들이 뭉칫돈을 내 놓는 것이 일종의 보험금 성격이 짙지 않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이른바 언론인들의 지원 활동에 강한 열의를 갖고 있다면 개별 기업 형태보다는 기업별 출연 형식을 빌어 연합 형태의 재단 설립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러한 일각의 비판적 시각에 대해 재단 실무자들은 부정한다.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두겸 삼성 언론재단 사무국장은 “그런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더 잘 아는 만큼 의혹을 살 행동은 하지 않겠다. 두고보라”고 자신한다.

그간 언론재단이 재벌사의 로비 통로로 활용되지 않느냐는 의혹의 시선을 받았던 것은 연수를 다녀온 사람들이 ‘동우회’등을 결성해 언론재단의 주도아래 지속적인 모임을 가져왔던 것이 큰 이유였다. 성곡재단은 ‘성곡 언론인 동우회’를, 서울언론재단은 ‘남산 클럽’을 만들어 1년에 수차례씩 모임을 갖는다. 일부 재단은 모기업이 보유한 골프장에서 ‘골프회동’을 갖기도 한다.

특히 선발 과정도 유력 매체만 선호하고 어학능력 등 해외에서의 학업 수행능력을 따지기보단 언론사내의 성장 가능성에 비중을 더 둔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언론재단 연수가 기자 개인적인 단위에서 이루어기보단 간부진과의 사전 협의를 거쳐야하는 만큼 희망자들이 직간접적인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언론사 차원의 언론재단 활용도를 낮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곡재단의 지원으로 미국 연수를 다녀온 한 종합일간지의 부장은 “해당 기업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 기사와 연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설혹 로비가 있다해도 기자 개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연수자 개인의 성향에 따라 해당 기업의 기사 처리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합리적 운영 등 투명성 있어야

최근의 언론재단 설립 ‘붐’은 기본적으로 막강해진 언론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동시 다발적으로 이같은 언론재단이 설립된 것 역시 기업 활동에서 언론의 비중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최근의 기업 환경과 무관치 않다. 아직은 장밋빛 계획만 내세우고 있을 뿐 언론계 안팎의 합리적인 검증을 받지 않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점에서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이화여대 이재경교수(신방과)는 “선발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기반아래 명확하고 객관적인 운영 기준을 마련한다면 재벌의 로비창구라는 혐의를 다소나마 벗어날수 있을 것”이라며 “ 연수 프로그램 전문가가 거의 없는 풍토에서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것 역시 언론재단이 해결해야할 과제중의 하나”라고 진단했다. 내실을 어느 만큼 확보하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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