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의 한국학연구소는 지난 3월 7일과 14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을 계기로 본 군사독재 잔재의 청산에 관한 ‘한국 현안문제 포럼’을 열었다. 첫날의 주제발표자는 동아일보 정치2부 차장으로 재직중 지난해 하버드대 니만펠로로 선발돼 이 과정을 이수중인 김재홍기자. 하버드대 동아시아연구의 중심인 페어뱅크센터 세미나실에서 이루어진 이날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개발독재의 공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체제의 동일성과 차별성 김영삼정부의 과거청산 작업 등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포럼에서는 특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체제에서의 한국언론과 지식인의 역할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됐다. 포럼에는 페어뱅크센터 소장인 에즈라 보겔교수, 한국학연구소장 카터 에거트교수, 옌칭연구소의 에드워드 베이커부소장, 마일란 헤이트마넥 한국사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 연구소는 또 두번째 포럼으로 이 대학 법대와 공동 페널토의를 개최했으며 김차장의 발표는 그 서론격으로 마련된 것이다. 본지는 이 포럼들을 김차장의 기고를 받아 소개한다.

미국

에서 전두환 노태우씨의 구속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듣다가 세가지 점에서 크게 놀랐다. 첫째는 박정희시대엔 권력남용과 독직부패가 적었다고 미화하면서 전·노체제를 그 이전의 군인정치체제와 영 다르게 보려는 경향이다. 두번째는 미국의 언론들이 노씨를 ‘한때의 개혁자’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세째로 한국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일수록 “이미 다 알고 있는 일들인데 왜 김대통령이 이를 갑자기 크게 터트리느냐”고 물어왔다.

과연 박정희씨는 플라톤이 인정한 현인(賢人)독재자의 범주에 드는 인물이었으며 전·노씨만 저질의 권력자였는가. 박씨는 사리사욕에서 초연한 양심적 개발독재자였는데 전·노씨가 그 과일을 포식한 타락자였는가. 또 김영삼정부의 전·노씨 구속과 5·18내란 수사는 과연 순수한 개혁인가. 아니면 거기에 모종의 정치적 복선이 섞여 있었는가. 한국 현대정치에 관한 이런 이슈들이 많은 쟁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노씨의 부패독직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시대엔 어떠했느냐”고 물어왔다. 이곳의 한국전문가들 사이에도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동질성과 차별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같다. 물론 두 사람의 개인적인 성품과 자질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치체제와 지도이념은 매우 동질적이라고 보는 것이 다수 한국인의 상식에 속한다. 우선 통치집단이 박정희씨와 동향출신의 군인정치인들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정책면에서도 정부주도형 경제성장, 정당에 대한 집권세력의 정치공작적 관리, 그리고 철저한 언론통제 등 전두환정권은 박정권의 기조를 그대로 답습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시대를 군정체제답게 만든 실세들이 중앙정보부장(후에 안기부장) 보안사령관 대통령경호실장이었다. 군인정치 체제에서 공식적인 권력구조의 5대기둥으로 -국무총리 -집권당대표 -국회의장 -대통령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 등이 꼽힌다. 그러나 이중 중앙정보부장이 나머지 4인의 고용된 민간 정치인들을 항상 조정 통제했다. 국정의 중요한 문제들일수록 이런 공식적인 권력구조보다는 군출신 실세들에 의해 막후에서 결정됐다.

특히 박정희체제는 많은 대학교수와 언론인들이 장관과 대통령비서관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군정성격 못지않게 테크노크라시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지식인들도 책임이 크다는 것으로 근거있는 말이다. 그러나 군인정치체제의 인물들은 오너와 피고용지식인으로 나눠 보아야 할 것같은 생각도 든다. 군정체제 참여 자체의 의식과 도덕성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들이 맡은 역할은 결정권 없는 기능적 피고용인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군인정치인들은 일반국민들 사이에 그들의 약점인 정통성의 기반을 넓히기위해 각각 신망있는 원로정치인들을 ‘정치적 가정교사’격으로 영입했다. 박정희체제의 초대 집권당 총재였던 정구영씨와 전두환체제의 집권당대표를 지낸 이재형 윤길중씨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실권을 행사했는지는 의문이다. 더우기 박씨의 경우 자신이 처음엔 진심으로 존경했던 정씨까지도 3선개헌 이후부터는 박해와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올바른 가정교사의 역할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유신체제는 각하 1인체제였다”는 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법정진술은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에 비하면 전·노체제는 최고권력자와 실세들의 자질면에서 박정희시대에 비해 뒤떨어지지만 1인체제보다는 넓은 의미의 ‘그룹에 의한 독재’라고 볼 수 있다. 독재권력으로서의 속성은 박씨가 훨씬 더 강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광주학살 사건의 경우도 박정희정권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면 명령체계와 책임소재가 분명히 밝혀지기 쉬웠으리라고 생각된다. 80년 전·노씨의 하나회그룹처럼 일국의 국정을 이끌만한 자질이나 정치기술도 못갖춘 군인집단이 발포하고 유혈진압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최고책임자와 중간명령자. 그리고 현장집행자도 정해지지 않은 군인집단이 시민을 상대로 발포진압 작전을 폈다는 것이 그들의 진술이다. 그런 집단이 80년부터 한국의 정권을 맡았다. 전두환 정권아래서는 하나회라는 군내 사조직이 그 주도 그룹이었다.

하나회의 조직자들은 이미 60년대 중반 소령시절부터 박정희체제의 정보정치기구에서 중간간부로 활동했다. 전두환소령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인사과장이었으며 노태우소령은 보안사령부의 전신인 방첩대의 내사과장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언론장악과 야당공작, 그리고 정보조작과 돈에 의한 정치를 박정희체제의 핵심부에서 보고 배운 것이다. 전·노씨의 부패상은 이때부터 씨앗이 뿌려졌다고 보아야 한다. 전씨는 최근 법정진술에서 수천억원 대의 비자금을 축재한 경위와 관련, “관행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 관행이란 박정희체제때부터 내려온 권력자들의 행태였다는 뜻일 것이다. 군인정치인들의 부패상은 전·노씨때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며 박정희시대에 부패독직이 없었다는 주장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

한국

의 군인정치 체제에 대해 경제성장을 치적으로 들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특히 외국학자들 사이에 강하다. 이는 일제식민시대 이후 축적돼온 한국민들의 역량을 모르는 소치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군사권위주의식 통제정책 -일제식민시대의 근대화기반 -미국의 원조 등이 그 배경으로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세가지가 한국의 경제성장에 주요요인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군인정치인들에 의한 개발독재는 똑같은 정부주도형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면서도 대만·싱가포르보다 후진성을 면치 못했으며 특히 국민적 합의면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 대만·싱가포르에서는 독재방식에 대해 일반국민들이 대체로 납득하는 경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엔 다르다. 많은 국민들이 민주화를 원했고 대학생들은 항의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저항을 보였다. 근로계층과 영세민들도 처음엔 잘 살기 위해 고생을 감수한다는 생각이었으나 점차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심화되자 개발독재를 혐오했다. 한국의 분배불균형은 멕시코에 버금간다. 이번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사건은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과실을 소수 특정집단이 독점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미국대학의 한국학연구가 지나치게 연구비라는 이름의 금력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어느 정도는 그 증거도 듣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에서 일본이 가장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최근에 이루어진 한국인들의 피땀어린 경제성장까지도 수십년전 일제가 만든 식민지수탈을 위한 시설덕분이라고 견강부회한다면 이는 ‘열강주의 역사기록’에 다름 아니다.

또 박정희체제의 미화작업과 관련, 그 체제의 수혜자들이 한국민들의 눈을 피해 미국과 일본의 학계를 대상으로 연구비와 함께 예찬 일변도의 자료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워낙 오랫동안 수혜를 누렸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도 자금력과 정보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노씨는 퇴임준비를 했었다는 점에서 박씨와 다르다. 그 퇴임준비중 하나가 엄청난 비자금 축재였다. 박씨는 갑자기 피살됐기 때문에 퇴임후의 대비를 못했을지도 모르며 또 그때문에 비자금문제가 폭로, 국민여론의 압력 아래 조사될 기회도 지금까지 없었다.

무엇보다도 32년간의 군인정치체제는 저항, 불복종 그리고 분열적인 정치문화를 남겼다. 이는 민주화와 국가발전에 필수적인 통합과 협력의 토양을 말살했으며 이의 극복이 앞으로 한국민들의 역사적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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