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 광주학살의 비극을 다룬 장선우감독의 영화 <꽃잎>이 개봉됐다. 상업영화로서는 이정국감독의 <부활의 노래>에 이어 두번째로 광주를 언급한 영화인 이번 작품은 광주학살에 대한 사실적 재현에 주목하기 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통해 광주의 실상을 충격적으로 되새기고 있다.

영화의 얼개는 비교적 단순한다. ‘오빠’라는 말을 빼고는 단 한마디의 온전한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어린 미친 소녀가 떠돈다. 떠돌다 인부 장씨를 만난다. 그는 소녀를 추행하고 까닭없는 폭행을 일삼는다.

소녀는 다시 떠난다. 그 한편으로는 오빠의 친구들이 소녀를 찾아 나선다. 이들은 같은 길 위를 제각각 헤맨다. 상징성도 단순하다. 소녀는 광주의 학살을, 인부 장씨는 민중을, 오빠의 친구들은 지식인을 대변한다. 로드무비와 탐색드라마의 변주인 셈이다.

장선우감독은 이 단순함 속에다 “고통받는 자들은 한데 모인다”는 80년대 시대정신과도 같았던 경구를 새겨넣는다. 감독은 광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즉물적 삶을 사는 인물인 인부 장씨(문성근)를 소녀의 고통의 밑뿌리로 다가서게끔 만든다. 이른바 ‘고통의 감염’.

그러나 그 감염은 치유를 목적하지 않는다. 소녀가 다시금 어디론가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고개숙이고 주저앉은 장씨. 이제 장씨에게도 학살의 상처가 문신으로 새겨지는 셈이다. 어쩔 셈인가? 이것은 ‘전·노씨 재판’ 따위의 일련의 정치적 해법에 대한 냉소인가 아니면 우리들 모두의 내면을 향한 도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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