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업계의 전반적 불황속에서 세계의 대표적 진보지들이 잇달아 위기를 맞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진보지인 <리베라시옹>이 지난 2월 대기업에 66%의 주식을 매각해 경영권을 넘겨준데 이어 미국의 진보적 논조를 대표해온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가 최근 경영난 타개를 이유로 편집국장을 해고하고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들을 완화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는 1950년대 미국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카시즘과 60년대 베트남전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 논조를 유지, 미국의 대표적 진보지로 명성을 쌓아왔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가 이같은 비판적 논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편집국장에게 발행인과 동등한 결정권을 부여하는 등 편집권을 철저하게 보장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는 최근 윌리엄 빌 우(60) 편집국장을 전격 해고시켜 이같은 전통이 더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예고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언론인 중 한명으로서 10년 동안 이 신문을 이끌어온 윌리엄 우 국장에 대한 해고조치는 단순한 인사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신문 경영진들은 편집국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지금까지 편집국장에게 주어졌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발행인에게 그 결정권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의 비판적 논조를 유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돼주던 발행인과 편집인 사이에 일상화된 논쟁과 줄다리기 분위기는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편집위원 감원조치에 뒤이은 것으로 경영난을 타개등을 위해 편집권보다는 경영권을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사태를 몰고온 경영압박은 비단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 10대 신문 중 7개 신문이 평균 2.5%의 발행부수 감소율을 보였다. 문제는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의 경우 전년대비 발행부수가 무려 5%나 감소한데다 광고 수입도 지난 90년 수준에 머무는등 경영상태가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의 발행부수는 1990년 38만2천부이던 것이 1995년 32만부로 줄어들었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의 이번 결정은 전문 컨설팅 회사의 경영평가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도 미국 언론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퓰리처 출판사(Pulitzer Publishing Co.)의 마이클 퓰리처 회장은 신문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컨설팅 회사에 경영평가를 의뢰했으며 경영진의 지시에 따라 계획이 잘 수행될 수 있는 명령체계의 확립과 편집권의 약화를 건의한 컨설팅 회사의 경영개선 방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이런 조치가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의 경영난 타개에 도움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몇몇 기자들은 발행부수와 매출액의 진정한 감소 요인은 과거와 달리 가볍고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는 최근의 편집방향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편집인원등 주요 인력의 인원 감소로 내용이 부실해져 독자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경영 압박에 처한 미국 언론들의 상당수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지면의 논조를 대중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이른바 ‘팔리는 신문’ 쪽으로 경영의 중심을 옮겨가는 것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지면만큼 독자들이 감동을 잃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세인트루이스 포스트-디스팻치 경영진의 이번 조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에 따라 다른 진보적 시각의 신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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