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숙박비가 1백80만원이나 되는 호텔방에서 밝힌 ‘국민을 향한 정치’…. 김대표가 묵고 있는 호텔방은 지난 4월 한소정상회담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내외가 사용했던 것으로 숙박비가 일반의 상상을 넘는다.

김대표는 이곳에서 10여일을 지낼 예정이므로 그의 휴가 행차가 얼마나 거창한 것인지 알만하다. 여름 휴가 숙박비로만 수천만원을 쓰는 정계 지도자가 그것도 조용히 있지 않고 정치 분란을 일으키는 행동을 거듭하는데 대해 국민들은 결코 달가워할 수 없다.

지금 민자당사에서는 국민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들린다. 호화판 휴가를 즐기면서 뭐가 모자라 더운 여름에 내분을 일으키느냐는 등 비난의 소리가 높다고 한다. 이들 소박한 서민들의 목소리가 바로 김대표에게는 ‘국민의 뜻’이 아닌지 묻고 싶다.”

이 글에서 도대체 ‘김대표’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놀라지 마시라. 지금의 김영삼대통령이다. 이글은 어디에 실린 것인가? 절대 놀라지 마시라. <서울신문>에 실린 것이다. 언제? 1991년 8월 3일자다.

나는 <서울신문>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언론사를 강의하는 사람으로서 <서울신문>의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해 가슴 아파하면서 서울신문의 역사가 곧 한국 언론사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서울신문>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 동향을 예의주시해왔다.

위에 인용한 글은 <서울신문>이 처해 있는 비극적 상황을 웅변해준다. 이 글은 당시의 김대표에게 매우 부당하다는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당시의 김대표가 민자당을 장악하면서부터 <서울신문>의 김대표에 대한 시각은 180도 달라진다.

김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대적인 부패 사정에 임했을때 당시 <서울신문>은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문이었다. 김대통령의 개혁이 갈팡질팡하다 실종되고 그의 독선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부터, 특히 김대통령의 사촌처남인 손주환씨가 사장으로 취임한 94년 12월이후부터 <서울신문>은 서울신문 노조의 지적대로 ‘권력의 사적인 기관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총선 국면에서 <서울신문>이 보이고 있는 작태는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정치보도와 논평에 관한한, 이건 신문이 아니다. 신한국당의 기관지다. 특히 김대중씨에 관한 보도는 3류 연예주간지보다 못한 무책임한 비방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신문> 사원들, 특히 정치부 기자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못할 짓을 강요해야 하는가? 만약 김대중씨가 집권하면 <서울신문>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 김영삼씨에 대한 태도를 180도 전환시켰듯이 김대중씨에 대한 태도 역시 180도 바꿀 것인가?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서울신문>의 위상과 역할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손주환사장이 문제다. 그는 6공의 실세로 일할 당시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언론관을 피력했던 인물이다. 그에겐 현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만 있을뿐, <서울신문>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다.

<서울신문> 노보 96년 2월 7일자는 묻고 있다. “서울신문사가 손주환사장 사기업인가?” <서울신문>노조는 손주환체제하에서 <서울신문>이 ‘언론이기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진단에 동의한다. 우리 모두 <서울신문>을 위해, 아니 이 나라 언론을 위해 대안을 모색해보자.

손주환사장은 곧 떠나면 그만이지만 사원들에게 서울신문은 평생 직장이다. 제2, 제3의 손주환사장이 나오지 않도록 사장 선임 방식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을 서울신문 사원에게, 더 나아가 국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서울신문의 기존 소유구조를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사장선임방식의 민주성만 확보되면, 서울신문은 상업주의의 늪에서 허덕이는 국내 신문들 가운데에 독보적인 고급지로 기능할 수 있다. 국정홍보를 하더라도 예민하거나 뜨거운 정치·정략적 사안은 피해가거나 공정성을 염두에 두고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보도하면 된다. 서울신문의 위상 재정립은 총선이후 언론계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돼야 한다.

서울신문 사원들의 자존심과 긍지를 지켜주고 더 나아가 서울신문을 한국 유일의 명실상부한 고급지로 태어나게 만드는 건 한국 언론 전체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신문 노조에게 격려와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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