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선전은 4·11총선 관련 만화의 단골 주제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각 당의 상호비방전을 시사만화는 공명선거를 해치는 저질 선거문화의 징표로 간주, 줄곧 호된 질책을 해댔다.

시사만화의 이런 입장은 장학로 수뢰사건을 계기로 가열되고 있는 폭로전에 대해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중앙일보(4월 3, 5일 만평)를 비롯해 국민일보(3일 만평), 세계일보(4일 만평), 조선일보(4일 만평, 3일 야로씨) 등이 각 당, 특히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폭로전을 주요 주제로 올리고 있다.

폭로전을 보는 이들 신문의 입장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서로 득될 게 없는 소모적인 싸움이나 4·11총선 가도를 가로막는 ‘지뢰밭’, 또는 표모으기용 공갈탄으로 묘사하고 있다. 흑색선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저질 플레이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인가. 조선일보(3월 27일 만평)는 장학로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지 말자는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시사만화의 폭로 혐오증은 얼핏 보아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지극히 당연한 교과서적인 훈계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외견일 뿐이다.

시사만화는 경계선을 나누지 않았다. 비방과 폭로의 경계선을 나누지 않은 채 둘 다 지양돼야 할 저질 선거문화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파장을 미칠만큼 무게가 실린 사실의 폭로는 비방과는 격을 달리 하는, 오히려 권장돼야 할 사실이라는 점을 시사만화는 무시해 버렸다.

두 당의 폭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시사만화는 외면하고 있다. 국민회의의 경우 구체적인 정황을 곁들인 사실(물론 검증이 끝나지는 않았지만)을 2차로 폭로한 데 반해 신한국당은 10대 의혹이라는 ‘포장지’만 내놓은 채 실내용은 내놓지 않고 폭로 위협만을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시사만화는 그 둘의 성격을 가르지 않았다.

감춰진 사실의 들춰내기를 ‘전문 기술’의 하나로 삼는 신문이 폭로 혐오증을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발병 원인’이 무엇인지는 장학로 사건 이후 시사만화가 양김, 또는 3김을 ‘못난이 3형제’로 그리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모두 다 추한 이면을 갖고 있는 ‘똥 묻은 개’(중앙, 4월 3일 왈순아지매)로 취급당한다면 좀더 더러운 개가 상대적으로 덕을 보는 게 이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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