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총선은 끝났다. 언론은 한동안 그 결과를 놓고 ‘사후 검시’를 하느라 바쁠게다. 어떻게 설명하든 다 말된다. 결과를 놓고 원인을 분석하는 것 누군들 못하랴. 그런데 우리 언론은 분석은 잘하는데 대안모색엔 참으로 게으르다. 아니 게으른 정도가 아니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련하다.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분석하든 한가지 분명한 흐름은 여전히 펄펄 살아 꿈틀대는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다. 언론은 선거 기간중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나쁘다고 설교를 해왔다. 어디 언론만 그랬나? 시민단체들도 지식인들도 지역주의를 타파하자고 캠페인을 벌였다.

그런데 또 그게 나타났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주의를 타파하자고 떠들었던 사람들은 혀를 끌끌차고 있을게 아니라 이제 진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년 대선에서도 또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캠페인을 벌일 것인가? 아니 죽을때까지 선거때만 되면 그 주문을 읊어댈 것인가?

개도 똑같은 게 한두번 반복되면 그게 무언지 알아챈다. 우리나라 선거판에서 지역주의적 투표성향이 나타난 게 도대체 언제부턴데 아직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겠단 말인가? 그러고서도 만물의 영장인가? 아직도 모자란가? 몇번을 더 겪고 나서 한 백번쯤 확인한 다음에야 대안을 모색할 것인가?

다시한번 말하지만 우리 제발 ‘지역감정 타파’라는 공허한 구호는 더 이상 외치지 말자.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그렇다는 말도 더이상 하지 말자. 3김씨가 사라지면 지역주의도 사라진다는 그 바보같은 소리도 더 이상 하지 말자.

우리나라 선거판에서 지역주의를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제를 하든 내각제를 하든 다음 4가지 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첫째, 중앙부처 국장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정부투자기관 임원의 지역별 쿼터제를 도입하자. 어느 지역 출신이 정권을 잡건 그 지역과 그 지역출신 사람들이 재미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거다. 아니 오히려 더 손해를 보게 만드는 거다. 쿼터제는 신축성있게 운영하면 되므로 매우 번거롭고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둘째, 지역개발정책에 관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민주화하고 투명하게 공개하자. 국회의원의 개인적인 로비가 절대 먹힐수 없게끔 하자는 말이다. 이를 위해 정보공개법과 회의공개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셋째, 진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자. 지금 모든 지역 사람들이 각자 자기 지역이 제일 낙후돼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영남인들이 더 아우성친다. 그들은 특정 지역 ‘푸대접’이니 ‘무대접’이니 하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각 지역이 서로 못산다고 시합을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그럴 것 뭐 있나? 그건 중앙을 대폭 축소하고 진짜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닌가? 중앙에 기대할 게 없으면 ‘푸대접’이니 ‘무대접’이니 하는 말도 사라질 게 아닌가.

네째, 그래도 중앙이 할 일은 남아 있을 터인즉,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권력의 지역주의적 경향을 감시하고 비판하자. ‘지역감정 타파’를 외칠 정성과 힘을 거기에 쏟으란 말이다.

지역주의는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으로 격파해야 한다. 그 반대는 절대 안된다. 지역주의가 나타나는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지 그 원인은 그대로 놓고 ‘그래도 지역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유권자들에게 아무리 떠들어봐야 먹히질 않는다는 말이다.

지역주의를 비판했던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해보라. 당신은 권력의 지역주의적 정략에 대해 개탄하고 분노해 본 적이 있는가? 김영삼 대통령의 그 지독한 지역주의적 인사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이라도 한번 해본 적 있느냐 말이다.

그런 맛이 없으면 뭐 할려고 정권을 잡느냐고? 바로 그런 생각이 문제다. 당신들의 그런 안이한 생각때문에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지자제 선거까지 자기 지역출신 정치인들이 대권을 잡는데 필요한 전초전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이 사회를 몰고가는 권력이 문제고 그런 권력을 용인하는 언론과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이 문제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걸 못 깨달았다면, 지역주의 타파는 또 물건너 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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