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총선에 처음 출마한 언론인 출신 후보자들의 선거 성적표는 ‘앵커출신 전승, 기자출신 전멸’로 요약된다. 박성범, 맹형규, 이윤성, 정동영씨 등 방송사 앵커 출신들은 낙승한 반면 성유보 전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을 비롯해 순수 기자 출신 후보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고배를 마셨다. 신문기자 출신 당선자는 대구 북구 을에 두번째 출마해 당선된 전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안택수씨를 그나마 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낙선한 언론인 출신 정치 신인들은 대부분 ‘돈과 경험 부족, 뒤늦은 선거운동’을 패인으로 꼽았다. 경기 하남에서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해 1위 후보자에 8천표 차이로 낙선한 한겨레신문 전 사회부 차장 문학진씨는 ‘5주’에 불과했던 선거운동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야권표가 분산된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문씨는 기자라는 경력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일반 사회인들의 인식이 나빠 오히려 흠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경기 군포에서 2만 1천표를 얻고 3위로 낙선한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 심양섭씨는 “경력은 도움이 되나 돈이 없는 것이 언론인 출신의 최대 약점”으로 꼽았다. 심씨는 JP등 지도부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쏟고 중앙당의 기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당이 “물 쓰듯 돈을 쓰는데는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이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한 심씨는 자신이 직접 당사자가 되면 객관적인 위치에서 정치를 보는 눈을 도저히 가질수 없다는 경험담을 털어 놓기도 했다.

광진을에 출마했다가 국민회의 추미애후보의 돌풍에 무릎을 꿇은 동아일보 전 북경특파원 김충근씨는 언론인 출신 답지 않게 ‘무명용사론’을 전개한다. 한때는 잘 나가는 기자였고 기사도 무진장 썼지만 이를 기억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상대후보자였던 추미애 후보는 자신이 선거에 출마하기전 이미 유명인사였다는 것. 뒤지는 지명도를 만회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살았지만 이를 따라잡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언론인 출신이지만 도리어 언론에 당한 측면도 있다며 씁쓰레 했다. 추 후보가 거의 전 여성잡지에 인터뷰기사가 실려 그 파급력을 실감했다는 것. 돈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기자 시절 숱한 사람을 사귀었지만 ‘돈’되는 사람은 없더라”는 것이다.

경기 안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한겨레신문 전 논설위원 문영희씨도 돈 문제로 속이 많이 탔다.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는 일당 ‘8만원’의 선거 운동원 수백명이 후보자 홍보물을 들고 거리를 누볐지만 자신은 일당 ‘3만원’의 운동원 수명이 지하철 역을 지키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 선거구의 30% 정도만 커버했다. 문씨는 그래서 자신에게 던져진 8천5백표에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고 있다. ‘3김 청산’과 ‘구정치 타파’를 염원하는 바램을 확인했지만 문씨는 당장 생계 문제가 걱정이다. 선거과정에서 수천만원대의 빚을 얻었다. 일단은 ‘먹고 살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판이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언론인 후보자들의 경우 대부분 아직 자신들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은 ‘차기 출마’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 같다. 다수의 낙선자들은 지구당사를 지키고 있었고 대부분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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