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주관이나 선입견이 눈에 띄게 줄었다. 정책을 부각시키거나 공약의 현실성을 분석하는 등 선거보도가 진일보했다. 일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방향은 바람직한 쪽으로 가고 있다.” (중앙일보 고흥길 편집국장)

“노태우정권때보다 나아진게 없다. 그때는 외부의 압력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압력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여당에 협조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신문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방송은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 (정남진 기독교방송노조위원장)

“선거운동 기간중 보도와 관련해 항의를 받은 적이 없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치우치지 않도록 기준을 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보도했다.”(KBS 김인규 정치부장)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선언에 대해 기자들이 한반도 위기상황이라고 기사를 썼지만 스스로 ‘위기’라고 느낀 기자는 거의 없다. 선거 말미에 몰아쳐 여권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북풍’(北風)은 언론의 부풀리기에 의한 작품이다. 언론이 신한국당에 10석 이상을 헌납했다.”(익명을 요구한 신문사 간부)

여권의 신승으로 막을 내린 15대 국회의원 선거보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진일보했다’는 평가와 ‘달라진게 뭐가 있느냐’는 평가가 부딪히고 있다.

총선보도를 진두지휘한 편집국장등 데스크는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다’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 여당의 은밀한 협조요청이 있지 않았느냐는 시각에 대해 이들은 “요즘 세상이 어느 땐데”라며 펄쩍 뛰었다. 중앙일보 고국장은 “외부의 압력이나 협조요청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KBS 김인규 정치부장은 ‘젊은 기자들의 감시’를 그 근거로 들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금방 보도국에 방이 붙는 실정인데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조선일보 최청림 편집국장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노력했다는데 후한 점수를 줬다. 정책이나 공약, 후보자의 경력과 자질에 대한 평가등 유권자들의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긍정적인 시도가 눈에 띈다는 것이다. 최국장은 “조선일보의 경우 후보자 재산 검증, 각 후보자가 분석한 ‘나의 라이벌’ 등 기획기사를 통해 유권자에게 판단의 자료를 제공하려 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세청등 관계기관의 비협조로 무산됐지만 후보자들의 세금 납부 실적도 공개하려 했다”며 “이것이 성공했으면 반향이 꽤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데스크가 선거보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장학로씨 축재 축소,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야권 공천헌금을 키운 것이라든지 북한 정전협정 파기에 대한 위기 과장등은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A신문의 한 사회부 데스크는 “장학로씨 축재와 야당의 공천헌금 문제를 ‘여야 폭로 공방전’으로 묶은 것은 노골적인 여당 봐주기”라고 비판했다.

특히 신문사쪽 간부들이 방송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들 신문사 편집간부들은 “실수라고 보기엔 좀 심했다” “개인적으론 불만이 있다” “신문보다는 방송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등 간접화법으로 방송사의 보도에 문제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장을 발로 뛴 기자들은 정당간 ‘양적 균형’을 문제삼았다. 양적 균형이 질적인 편파로 이어진다는 항변이다. KBS 황상무기자는 “후보자간 우열이 분명히 드러나는데도 양을 맞추다보니 이를 반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형편없는 후보인데도 얼굴은 내줘야 하는 일을 겪으면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현장분위기가 전달이 안된다. 양을 따지는 평면보도보다 질을 우선하는 입체적인 보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회의를 출입하는 한겨레 김성호기자는 “양이 저널리즘은 아니다”며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김기자는 “선거보도가 전체적으로 나아진 인상이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나아졌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결국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언론사노조의 평가는 매섭다. 대체로 언론이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부 언론사노조가 총선기간중 자사보도를 모니터한 보고서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선심성 정책기사 판친다’ ‘정당연설 스케치 컷은 여당자리’(서울신문노조 공보위 소식) ‘눈치보다 사라진 삼재시계’ ‘한발 비켜간 장학로 보도’(경향신문노조 총선특보 1,2호) ‘장학로 축재 보도는 작게작게, 알맹이 없는 YS말씀은 1면 톱’(동아노조 공보위광장) ‘쟁점 기사 비켜가기, 특정 여당인사 봐주기’(기독교방송 공방위 특보)

KBS의 경우 공정방송위원회서 북한보도를 두고 노사가 감정적인 충돌을 하기도 했다. 데스크들과는 정반대의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보도국의 현장분위기와 기자들의 정서에 가장 근접해 있는 노조의 이같은 평가는 데스크들의 시각과 현장기자들의 정서 사이에 ‘깊은 골’이 패여 있음을 드러낸다.

시민단체들은 선거보도가 정당의 움직임이나 후보자를 따라다니는 나열식 보도에 치우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권자 소외현상이 심해졌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백미숙간사는 “7,8년간 선거보도 모니터를 했지만 이번 15대 총선의 경우에도 예전의 정형화된 틀은 바뀌지 않았다. 유권자에 포커스를 맞추는 보도가 거의 없었다. 방송의 경우는 선거와 관련한 기획이나 특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