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정치는 합종연횡의 예술이라고. 그것이 과연 예술로까지 찬미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합종연횡의 정치술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힘있는 여당이 힘없는 야당을 상대로 의원 빼가기에 혈안이 돼 있는 최근의 정치 현실은 야당간 연합의 필요조건을 형성해 왔다. 김대중·김종필 두 총재가 회동한 것은 신한국당이 제공한 야당 연합의 필요조건에 충분조건을 덧붙이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었을 것이다. 힘있는 여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힘있는 야권이 돼야 하니까.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각 신문의 시사만화는 양김의 공조를 백태가 낀 눈으로 꼬나보고 있다. 세계일보는 양김의 공조를 ‘견원지간의 만남’(희평, 5월 4일)으로, 조선일보는 ‘물과 기름의 공조’(만평, 5월 4일)로 비꼬고 있다.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

국민일보(만평, 5월 4일)는 양김의 공조 확인에 뿌리가 다름을 애써 내세우고 있으며, 한국일보도 외발 자전거로 외줄을 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사만화에 비친 양김의 공조는 3당야합을 연상시킨다.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색깔과 전력마저도 내팽개치고 ‘동거’를 강행하는 듯한 묘사는 3당야합의 이미지 그대로다.

하지만 시사만화의 이런 묘사는 두 가지 점에서 과잉 해석과 초치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양김 씨가 공조체제를 구축하면서까지 집착했던 그 ‘무엇’이 다름 아닌 야당 존속의 ‘생존권’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그 첫째다. 양김 회동 합의문에 ‘내각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점에 비춰 또 한번 비밀 각서가 오간 것 아니냐는 설이 도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두 당의 공조로는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그런 의혹이 신한국당에서 먼저 제기됐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별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액면 그대로 신한국당의 파행적인 의원 빼가기에 맞선, 공동 방어를 위한 악수라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양김 공조체제에 색깔과 전력의 차이를 내세우는 것은 격이 맞지 않는다.

시사만화의 과잉 해석이 공조 체제의 절박성을 ‘간과’한 결과라는 점은, 이들 시사만화가 모두 양김의 회동을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와 분리시키고 있다는 데서 확인된다.

이들 시사만화만 보면 양김씨가 왜 회동했는지 그 이유를 찾을 길 없다. 양김씨가 회동의 제1의제로 표명했을 뿐 아니라, 시사만화도 최근 독자의 ‘웃음 선택권’까지 앗아가며 줄기차게 그려왔던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를 별개의 사안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시사만화의 ‘간과’가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해석이 성립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시사만화의 ‘의도적 간과’는 결국 양김 회동의 평가절하로 이어졌다.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이 ‘억지 동거’를 시작한 모양새가 돼 버린 것이다. 시사만화 스스로 규탄해 마지 않았던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 ‘작태’를 막기 위해 모인 두 사람에게 빙초산 한 병을 통째로 부어버린 셈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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