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엔 평가가 따른다. 현상의 원인을 짚어내서 이후의 향방을 전망하기 위해 평가는 필수적이다. 총선 평가는 더더욱 필수적이다. 늘 ‘이변’으로 기록되는 총선사의 이면엔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자리하기에 총선 평가는 의무에 가깝다.

시사만화는 총선평가의 의무를 짊어져야 하는 주체들 가운데 맨 앞자리에 놓인다. 갖가지 이름으로 등장하는 시사만화의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보통 사람이라는 점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국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 아니겠는가.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국민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는 시사만화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심층 분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변’을 일구어낸 민심의 줄기보다는 곁가지만 무성하게 그려놓고 있다. 방송 4사의 ‘코미디 여론조사’ ‘신한국당의 논공행상’ 등이 곁가지의 주된 소재들이다.

곁가지 그리기의 대표주자는 문화일보다. 총선 결과에 대한 분석은 제껴놓은 채 방송 4사의 ‘코미디 여론조사’(12일자 만평, 13일자 ‘고바우 영감’), 앵커맨의 정계 진출(13일자 만평), 국회의원 당선자의 ‘거만증’(12일자 ‘고바우 영감’)만을 주제로 올리고 있을 뿐이다.

문화일보와는 달리 다른 신문들은 줄기 그리기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 이들이 성의 표시로 내민 것은 북풍. 북한의 무장병력 판문점 투입 사건이 유권자의 안정심리를 자극, 신한국당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너무 단순하다. 그리고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선거 직전까지 북풍과 장풍, 그리고 각당 지도자들의 각종 추문을 동급으로 평가해 온 게 시사만화 아니던가. 더구나 총선판세를 가름지은 수도권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이 돌출적인 안보문제에 휩쓸릴만큼 유동적이었는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안보상품에 이골이 날대로 난 사람들이 바로 수도권의 비판적인 유권자들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은가.

민심의 혈맥은 북풍보다는 기권을 감행한 37%의 유권자와 야당 지지에서 한발 물러선 수도권 정서에서 찾는 게 더 타당할지 모른다. ‘범여’의 선전과 ‘범야’의 부진, 그리고 비판 성향 유권자들의 이탈. 이 양자 사이에 민심의 혈맥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신문은 늘 총선결과를 이변으로 기록해왔다. 자신들이 내린 예단을 기준 삼아 이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속 편하게 이변으로 규정지은 채 그 원인을 돌출변수에서 찾곤 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평가자로서의 능동성은 무시한 채 돌출변수에 휩쓸리는 미성숙한 정치대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 한번 이변의 기록사를 예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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