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이번 15대 총선은 “21세기의 인재를 뽑는 선거”라는 국민들의 큰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언론의 선거보도는 예전 문제점이 개선되지 못하고 계속 되풀이돼 올바른 선거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실패했다는 평가다.

선감연 모니터팀이 2월부터 4월 10일까지 경향, 동아, 문화, 조선, 중앙, 한국, 한겨레 등 7개 일간지를 대상으로 모니터한 결과, 신문은 쟁점발굴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쟁점없는 선거’라는 성급한 단정아래 정책선거로 이끌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중순 노재헌씨의 ‘YS대선자금 수수설’과 국민회의의 폭로로 드러난 장학로씨 비리사건은 김영삼정권의 개혁성과 도덕성을 평가할 수 있는 계기였음에도 각 신문이 축소보도로 일관, 쟁점화를 회피했다. 각 당의 공약 정책이나 후보자 소개에 대한 정보도 양이나 질에 있어서 함량미달인 기사가 많았으며 유권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는 데 미흡했다. 반면 유준상의원이 주장한 ‘20억 요구설’과 검찰의 공천헌금 수사에 대한 보도는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크게 다루는 한편, 여야의 ‘폭로전’을 부추겨 여당에 유리한 기사는 키우고 불리한 기사는 무조건 빼거나 줄이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이런 보도태도는 선거기간 동안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에 공히 적용돼 이번 15대 총선에서 간접적인 ‘여당편들기’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특히 북한관련보도는 이번 선거의 판도를 바꿔놓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3월말 북한 인민무력부 김광진부부장이 한국군의 호국 96년 훈련을 비난하면서,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남쪽에서는 전쟁전야에나 볼 수 있는 군사적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제 문제는 전쟁 발발여부가 아니라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데 있다”는 발언을 전후사정을 빼고 “전쟁은 기정사실”이라는 부분만 강조해 집중보도했다.

그리고 선거일 직전인 4일 북한의 DMZ 불인정 선언 이후, 신문은 금방이라도 북한군이 남침을 감행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북한관련 보도는 집권여당이 선거에서 불리할 때마다 정략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불공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는데, 언론의 전쟁상품화는 그대로 재현됐다.

그리고 신문의 ‘폭력선거’ ‘금권선거’ 등에 대한 지나친 부각과 ‘공명선거’ 실현을 위한 시민단체나 유권자의 활동 외면을 들 수 있다. 법정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서 신문들은 몇몇 후보들의 불법 선거운동이나 미확인된 소문을 1면이나 사회면 머릿기사로 올려 대대적으로 보도해 유권자들에게 정치불신과 냉소주의를 조장하는데 앞장섰다.

3월 11일부터 25일까지 16일간 각 신문의 1면기사를 분석한 결과, 언론이 ‘선거’의 부정적인 측면에 더 관심을 두거나 중앙, 동아, 한국 등 유력 일간지들이 선거기간 동안 자사홍보를 위한 상품성 기사에 집중하는 등 의제설정 기능에 소홀할 뿐만 아니라 독자의 알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와중에도 ‘깨끗한 선거 바람도 분다’ ‘환경보호하며 선거운동한다 ― 그린후보 백태’, 그리고 ‘유권자의 소리’ ‘달라지는 선거문화’등은 유권자의 시각에서 달라진 선거문화의 모습을 분석해보는 새로운 접근의 참신성으로 인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송

선거시기 방송보도의 편파성, 불공성에 대한 시비는 끊이지 않고 나왔다. 그러나 문민정부 아래 처음으로 치러진 이번 총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예전과 달랐다. 따라서 “깨끗한 정치, 새로운 정치” 실현에 앞장서야 할 언론의 역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방송은 노골적인 ‘여당편들기’를 통해 권력을 받들며 유권자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시했다. 선감연 모니터팀이 2월 1일부터 4월 10일까지 약 2달동안 방송 3사의 메인뉴스를 모니터한 결과, ‘여당승리 야당패배’라는 이번 총선결과는 방송의 불공정보도와 권력의 금권을 앞세운 조직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한달전인 2월의 경우, 대통령동정과 정부의 선심행정의 지나친 확대보도로 “땡김뉴스”를 재현해 간접적인 여당편들기에 나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통령관련보도는 2월 한달동안 KBS 54건, MBC 55건으로 실제 기사가치보다 중요하게 취급하면서 턱없이 많은 보도꼭지수를 할애해 대통령이면 무조건 톱을 비롯한 상위순서에 집중배치, 의제설정을 대통령에게 집중했다. 신한국당의 총재인 대통령의 지나친 부각은 결국 여당을 지원하는 불공정보도로, 그 보도량이 92년 14대 총선보다 거의 2배에 달해 이번 총선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 편파보도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선거를 정책 공약대결로 유도해야 한다는 각계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방송3사는 이를 외면, 유세보도가 선거보도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인물동정 및 행사안내 등 당락과 우세여부 또는 흥미거리 위주의 보도에 머물렀다. 반면 탈법, 불법선거에 관련된 보도는 부풀려져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정치냉소주의 확산에 일조했다. 방송이 각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정책 공약을 소홀히 취급하며 정치적 소신이나 경륜이 검증되지 않은 상업적 인기를 등에 업은 인물들의 화제성 보도에 치중한 것은 정치권에서 더 실효성있고 유익한 정책을 개발하도록 추동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유권자의 판단에 필요한 정보제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방송은 여당에 불리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사건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쟁점을 회피하며 본질접근을 꺼려해 사건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파장을 축소했다. 대선자금 및 공천헌금 공방이나 장학로 부정축재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다. 방송은 검찰의 ‘축소수사’라는 비판을 받은 장학로 부정축재는 작게 다룬 반면, 야당에 대한 ‘공천헌금’ 수사나 불법선거운동 의혹은 크게 키워 정부 여당 감싸기에 나서는가 하면 장학로 비리와 공천헌금을 함께 묶어 보도하는 등 정치불신을 조장하기까지 했다. 역대 선거에서 지적되었던 여야간 보도시간 차별도 여전해 그 비율만 줄었을 뿐, 여당편향의 편파보도는 계속됐다.

특히 막판 선거변수로 등장한 북한의 비무장지대 불인정선언은 거의 방송의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4일부터 선거 하루전까지 관련보도로 뒤덮였다. 북한관련보도는 3월말에 비해 방송3사 공히 보도시간은 20%포인트, 보도꼭지수는 3배로 늘어나 지나친 과장확대로 위기의식을 조성하는 등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극했다. 정부와 미국의 발표에 대한 사실확인 및 여과없이 무비판적으로 전달된 북한관련보도는 신한국당의 ‘안정론’ 부각과 동시에 이뤄져 총선을 겨냥한 ‘막판뒤집기’용 카드라는 비판에 힘을 실어줬다.

이번 선거에서 방송의 불공정성이 심하게 지적받은 것은 상업방송인 SBS다. 노조라는 내부적 견인장치가 있는 KBS, MBC와 달리 SBS는 대통령동정 및 선심행정, 북한관련보도에서 단연 선두를 달려 방송의 공정성 침해라는 측면에서 다각적인 대응이 제기됐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정치권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방송의 선거보도는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후진성을 보여 과연 정치발전에 언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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