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일 오후, D데이-9, 부산에 왔다. 허름한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카메라 취재기자를 닥달하다 시피하면서 서구를 찾았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은 신한국당 공천에 탈락한뒤 무소속으로 나선 모후보의 개인연설회. 정확히는 가두 유세장이다. 카메라 취재 기자가 정신없이 촬영하는 동안 겨우 분위기를 살핀다. 후보는 정권핵심의 미움을 받아 공천에서 탈락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천자에 대한 공격의 강도도 생각보다 강하다.

“옳지, 내일 뉴스제작에 사용할 녹취는 저거다.”

카메라 취재기자가 마이크를 빼고 청중들의 반응을 스케치하는 동안 후보 비서관을 붙잡고 겨우 취재를 했다. “판세는? 주요 전략은? 강점과 약점은? 유권자들의 반응은? 전망은?” 개략적인 감만 잡은채 고개를 끄덕인 뒤 휴대전화를 잡는다.

“몇시에 어디라고요, 여기는 서대신 3동인데요, 어떻게 가죠” 여당후보의 개인연설장은 부산의 특징인 산복도로옆. 멀티비젼을 장착한 트럭도 보이고 사람도 제법 모였다. ‘동원했나’

여당후보의 강조점은 역시 지역발전론. 한 아주머니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제2의 도시라는데 화장실도 공동으로 사용하고 수돗물도 오후에 찔끔찔끔 나온다는 대답. 김대통령이 7선을 한곳인데 이렇다는 푸념들이다. 기자얼굴이 나가는 클로징 스탠드업에는 이 내용을 넣고 부산 민심동향의 풍향계라는 말을 넣어야지. 대충 구상을 해 둔다.

다음 국민회의 후보. 어느 시장으로 오라는데 가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골목 골목을 찾아 다니다 겨우 만났다. 유세차량도 없고 함께 다니는 운동원도 두세명뿐이니 찾기 힘들 수 밖에 없다. 야당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패기가 좋다. 그러나 해는 뉘엇뉘엇지고. 그림이 안된다. 적진에서 고전하는 것이 뻔한 야당후보지만 그림은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후보측과 상의해 내일 아침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꼭 유세차량을 몰고나오라는 부탁과 함께. 후보 9명 가운데 겨우 2명을 끝냈다. 7명이 남았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밤새 전화를 걸었다. 무소속 4명은 내일 시장에 10분 단위로 오도록 했다. 민주당과 자민련 후보는 한시간 간격으로 겨우 약속을 받아냈다. 3일, 오후 4시에 촬영을 모두 끝냈다. 부산방송총국으로 가서 원고를 작성했다. 후보들도, 취재기자도, 유권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여당후보와 무소속후보간의 2파전이라고 하지만 다른 세 당후보의 육성을 다 내야 한다.

공정성 때문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편파성 시비를 피하자는 것이다. 서울로 전화하니 부장의 OK사인이 났다. 편집을 시작했다.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후보들의 육성편집이다. 후보들의 특징도 살리면서 메세지가 강한내용을 담아야 하는데 방송되는 후보육성은 길어봤자 9초에서 10초 남짓에 불과하다. 1분40초 리포트에 후보 다섯명과 기자얼굴 10초를 우겨 넣으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소속은 얼굴만 내주자. 또 문제가 생겼다. 후보들의 연설이 문장은 안되고 너무 길다. 9초씩 똑같이 내야 하는데... 짤라 붙일 수 밖에. 육성을 자르다 보니 이번에는 얼굴이 좌우로, 아래위로 마구 튄다. 8시반이 넘어 편집테입을 서울로 전송했다.

방송국에 앉아 있으니 처량하다. 선거취재가 이런 것인지… 투표전날인 10일까지 부산, 경남지역을 오락가락 하며 이렇게 보도했다. 선거를 앞두고 언제부턴가 뉴스를 초단위로 재서 편파다, 뭐다 따지는 곳이 많이 늘었고 정치부에서도 이번 총선보도에서는 적어도 편파시비에서 만큼은 벗어나자며 보도준칙을 만들어 기준을 삼았다. 후보를 잡는 카메라 앵글도 똑같게. 육성길이도 똑같게.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도 똑같게. 합동연설회 보도는 정당순이 아니라 연설순서대로.

한 후보가 유권자와 악수하는 장면을 촬영했으면 다른 후보도 그런 장면을 만들어 넣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최소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나는 서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공정했을런지는 모르지만 시청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에서는 오히려 멀어졌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동정수준을 넘지 못하는 여당기사를 방송하는데도 동의할 수 없지만 보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야당기사도 내야 한다는 주장에도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정치기사라고 정치적 잣대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풍토가 오히려 언론의 정치종속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정치뉴스가 언제 질보다는 공정성 시비에서 허우적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선거후에 더욱 또렷해지는 물음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